인터넷 쇼핑을 단 한번이라도 해봤다면 인터파크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인터파크에는 국내 최초, 국내 최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9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시작했고, 국내 인터넷 쇼핑 이용 인구 1천900만명 중 절반 이상인 1천150만명이 인터파크 가입자다. 인터파크를 이끌고 있는 이상규 사장은 대구 출신이다.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인터파크 본사에서 이뤄졌다. 크지 않은 체격이었지만 희끗희끗, 곱슬곱슬한 머리가 눈에 확 띄었다. 베토벤 머리 같다. 역시 패션을 아는 사람은 파마를 한다. 사실 기자도 파마를 했다.
◆인터파크, 도전과 성공
-인터파크에는 '한국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데요. 어떻게 창립하게 된 거죠?
"처음 인터파크 사이트를 오픈한 건 1996년 6월 1일이었는데요. 이기형 회장이 데이콤 내에서 사내 벤처로 시작을 했습니다. 저는 1997년 10월 1일에 '데이콤 인터파크'로 독립 법인을 만들면서 참여했고요. 당시 데이콤은 통신회사였고 '천리안'이라고 하는 부가통신사업도 크게 하고 있었는데요. 인터넷이 보편화된 세상이 오면 어떤 사업 기회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쇼핑몰을 만들자는 생각을 한 거고요. 그런데 너무 빨리 시작한 거죠. 처음 몇년은 진짜 고생했어요. 너무 빨리 시작해서."
-경북 상주가 고향이던데 대구에는 언제 왔습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 김천 서부초등학교에서 대구로 와서 중·고교까지 다녔어요.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대구가 고향인 셈이죠. 어린 나이에 유학을 시작했어요. 부친이 교편을 잡으셨는데 큰 도시에 보내서 공부를 시켜야한다는 생각을 하셨나 봐요. 사실 부모님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생활이나 공부에 전혀 간섭을 안하셨어요. 자식들이 조금만 커도 인정을 해주고 특별히 나쁜짓을 한 게 아니면 별말씀을 안하시죠."
-인터파크를 이끌어 오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사실 초기에는 쇼핑몰에서 하루에 100만원어치도 안 팔릴 때도 있었어요. 쇼핑몰 운영 수익으로는 도저히 먹고살 수가 없어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쇼핑몰 구축해주는 사업을 하면서 먹고살고 그랬거든요. 그게 참 힘들었어요. 영업을 하는 게. 직원 월급 주기조차 힘들었던 시기였고. 그러던 중에 정보통신부에서 발주낸 우체국 전자 상거래 시스템 구축사업이 있었는데 이게 한 3억원쯤 됐던 것 같은데 그 사업을 땄을 때 진짜 좋았죠. 2002년 월드컵 티켓 판매대행사업도 기억에 남네요. 그게 2000년 12월 21일인가 그랬는데 큰 프로젝트였어요. 그날 전 직원이 모여서 파티를 했죠. 월드컵 티켓 사업을 계기로 대외적인 인지도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성공이 어색해
-지역 출신 기업인으로 상당히 성공한 케이스죠?
"사실 '성공'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어색하고 이상해요.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는 게 뭘까요. 참….
-성공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시는군요.
"인생과 사회적으로 무엇이 가치있는 것인가 고민을 하죠. 내게 있어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갖고 살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는데…. 성공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하거나 의미를 폄훼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성공'이라는 말들이 너무 형식이나 외향적인데 치중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을 많이 벌었다든가, 높은 지위에 올랐다든가, 이런 것들이 성공의 기준으로 인식되는 데는 불만이 있죠."
-승부욕이 강한 편이세요?
"원래 그렇진 않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평화주의자입니다. 갈등을 잘 견디지 못하고, 무엇이든 안정된 상태들을 좋아하는 성격인데요. 우유부단한 거죠. 그런데 사업을 하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과감한 결단력이 보완된 것 같습니다. 사업에서 우유부단하다는 것은 굉장히 치명적이거든요. 제가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인터파크의 주요 가치 중의 하나가 도전 정신이고요.
◆기회는 많다. 도전 정신을 가져야
-이명박 정부 시대에 기업 환경이 어떻게 변할 거라고 보십니까?
"기업 활동을 왕성하게 할 수 있는 환경들을 만들겠다는 현 정부 정책은 기본적으로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부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정책을 중심으로 가는 게 옳다고 봐요.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높여 보려는 정책은 유효하지도 않거니와 부작용도 많고 부의 분배의 왜곡현상을 가져올 수도 있지요. 이 대통령이 대기업 재벌 출신이어서 지나치게 대기업 중심으로 정책을 보고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오히려 대기업들의 도덕적 기준을 높이는 쪽으로 신경을 써야 된다고 봅니다."
-지난해 매출이나 영업 이익이 많이 감소했던데요. 이유가 뭡니까?
"너무 자신감이 컸고 지나치게 도전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온라인마트나 게임 같은 신규 사업에서 손실이 너무 컸어요. 기존 사업이 그대로 잘 나갈 거라고 보고, 신규 사업에서 또 다른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너무 컸던 게 문제였죠. 그래서 지난해 말부터는 완급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는 좋은 실적을 낼 걸로 봅니다. 그룹 전체로 봤을 때 1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려고 합니다."
-지난 2003년에 대구에 컨택센터도 만들고 최근에는 모교인 달성고에 장학기금으로 1억원을 내기도 했는데요. 지역 기여에 대한 장기적 계획이 있으신가요?
"저희가 대구에 컨택센터를 처음 만든 거나 다름이 없는데. 사실 대구가 고향이라서 만든 건 아니고요.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데 최적의 도시가 대구였습니다. 대구는 대학 수도 많고 인력 자원도 좋은데 일자리가 적거든요. 사실 대구 고객센터의 만족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높고 퇴사율도 낮아서 굉장히 좋았어요. 그 이후 대구시에서 컨택센터 유치를 하면서 지원금을 많이 줬어요. 저희는 받은 게 없었고 오히려 피해를 봤어요. 다른 업체들이 대구에 고객센터를 만들면서 경험이 있는 우리 인원을 다 빼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대구시에 사무관으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야, 너는 친구를 도와주지는 않고 피해만 입혀서 되겠냐.' 그랬더니 그 친구가 '네가 고향에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해라.' 그러더라고요. 온라인 사업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도구가 됩니다. 대구의 업체들이 인터파크 쇼핑몰에 제휴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청년 실업이 심각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도전적이기를 바랍니다. 기회는 굉장히 많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도 현실이지만 사회는 갈수록 빨리 변하거든요. 그 때문에 사업의 기회도 더 빠르게 많이 생기는 거죠. 사회가 안정됐을 때는 기존의 기업들을 뚫고들어갈 공간이 별로 없는데 사회가 역동성이 커지면 사업의 기회도 더 많고 성공 확률도 그리 낮지 않습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이상규는?=1966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초교 6학년때 대구로 유학, 경구중과 달성고를 졸업했고 서울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데이콤 전략기획본부에서 일하던 중, 이기형 회장의 권유로 인터파크에 합류했다. 2000년 인터파크 구스닥(현 G마켓) 사장, 2002년 인터파크여행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고 2005년부터 인터파크 대표이사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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