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취 중 각성 다룬 헐거운 스릴러 '어웨이크'

흥미진진 유체이탈? 스릴없어 긴장이탈!

마취 중 깨어난다면?

그러나 몸은 움직일 수 없고, 집도하는 의사는 그가 깨어난 줄도 모른다. 메스가 배를 가르고 심장을 꺼내는 고통에 고함을 지르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의식만 깨어 있을 뿐, 그는 얌전한 환자다.

'마취 중 각성'은 수술 중 마취가 풀려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를 일컫는 의학 용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27일 개봉한 '어웨이크'는 지난해 8월 개봉한 한국영화 '리턴'과 비슷한 '마취 중 각성'을 소재로 한 영화다. 그러나 상상은 끔찍하지만, 영화는 그리 끔찍하지 않은 스릴러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영화다.

뉴욕의 경제를 주무르는 22세의 백만장자 클레이튼(헤이든 크리스텐슨). 작고한 아버지 덕에 부와 명예를 가진 부러울 것 없는 젊은이다. 그러나 가지지 못한 것이 있으니 건강한 심장과 사랑하는 여인 샘(제시카 알바)이다. 다행히 심장을 구해 친구 의사에게 이식 수술을 받기 전날, 어머니의 반대에도 샘과 몰래 결혼식을 올린다.

긴 수술에 들어간 클레이튼은 마취에도 자신의 의식이 또렷한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의사 중 하나로부터 알 수 없는 말을 듣는다.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음모를 직감하지만 그는 움직일 수도,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죽음의 공포와 함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려온다.

'마취 중 각성'은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TV시리즈 '브레이크 다운'(1955년), 이탈리아 영화 '작은 인형들의 긴밤'(1971년)에 한국영화 '리턴'까지 많이 만들어진 소재다. 절대 고독과 절대 고통, 그 속에 도사린 음모는 훌륭한 플롯이다.

그러나 조비 해롤드 감독은 아주 쉽게 간다. 많은 길 중에 가장 편한 길을 골라, 편하게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전반부는 보잘것없는 배경의 여비서 샘과 백만장자와의 간당간당한 로맨스를 깔고, 수술대에 오르는 순간 스릴러로서의 호흡을 가다듬는다. 로맨스가 밋밋하니 사랑의 장애물로 어머니(레나 올린)를 등장시키고, 그 어머니는 심장 이식 수술을 맡은 클레이튼의 친구 의사를 못 믿어 반대하는 상황까지 만들어나간다.

수술대에 갇힌 주인공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유체이탈이라는 상황까지 도입한다. 클레이튼은 수술대에서 빠져나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음모의 조각을 꿰맞추고, 어머니와 화해하고,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까지 알게 된다.

수술대에 올라 각성 상태인 것을 깨닫는 5분 정도는 제법 긴장감이 넘친다. 그러나 그뿐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야기의 흐름은 수술복처럼 헐겁다. 스릴러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반전도 쫀득한 맛은 없다.

각성 상태에서 알게 된 음모에 대해 주인공이 하는 일이라고는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할 뿐 어떤 결정적 강펀치도 날리지 않는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각성 상태의 관객에게 어떤 친절도 베풀지 않고 극장문을 나서게 하는 것, 이것이 스릴러라고 내세우는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심지어 주인공조차 마취 상태에서 깨어 병원에서 날뛰는데, 감독만 마취상태인 것 같다. 84분. 15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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