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감 후] 어륀쥐 새우깡

미국을 여행 중인 한국인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피를 철철 흘리며 누워있는 그에게 미국 경찰이 다가가 묻습니다. "How are you?" 한국인이 힘들게 고개를 들며 대답합니다. 미소를 띄운 채…. "I am fine, Thank you. And You?"

20년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도,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영어 바보' 신세를 면키 어렵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 분야를 꼽으라면 우리나라 영어교육 시장이 아닐까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영어 몰입 교육' 운운하며 칼을 빼들었다가 도로 집어넣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책상머리 정책 리스트에 등재될 만한 영어 몰입 교육 정책은 국민들의 DNA 깊숙이 각인된 경쟁 본능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교육 시장이 꿈틀대고 국민들의 영어 스트레스는 감내 수위를 넘어서고 맙니다.

얼마 전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가 철회한 것을 두고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습니다. "어륀쥐(오렌지)가 새우깡에서 발견된 마당에 공천은 언감생심이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권력'입니다. 남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점하게 하고 기득권의 대물림을 가능케 하는 초강력 무기입니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국민들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학부모들이 남의 집 아이보다 내 아이의 영어점수를 높이는 데 관심 있다는 거지요. 입시로 연결되는 것을 차단하지 못할 경우 영어 몰입 교육은 재앙의 다른 이름이 될 뿐입니다. 이번 주말판에는 영어 '몰빵'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에서 엉터리 영어가 넘쳐나는 역설적인 현장을 취재해 담았습니다. 엉터리 영어가 난무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영어 콤플렉스에 젖어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겠지요.

취재를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 주에는 추억의 가수 이장희씨를 취재했습니다. 시인 서정주는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스물 세햇 동안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다'고 했지요. 화려한 무대를 뒤로 하고 울릉도에서 더덕 농사꾼으로 정착한 이장희에게서도 서정주 시인이 묘사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형편 때문에 억누르고 살긴 해도 바람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자유 본능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평생 함께하는 들숨과 날숨 역시 바람이지요?

한사코 고사하는지라 그와의 인터뷰는 어렵사리 이뤄졌습니다. 취재를 하다 보면 어떻게 해서든 매스컴을 타보려는 사람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장희씨 같은 사람을 인터뷰할 때가 더 보람 있는 순간일 수 있더군요.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취재해 지면에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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