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헛되고 덧없다

17세기 프랑스 화가 조르쥬 드 라 투르는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촛불에 의해 인물의 표정이나 동작이 신비스럽게 밝혀져 있는 장면을 그렸다. 드 라 투르는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주제로 여러 작품을 제작했는데, 한때 육신의 죄를 지었던 그녀는 깊은 고독의 순간에 삶을 성찰하고 있다. 거울 앞에 반사된 촛불의 빛을 통해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그녀의 한손은 해골을 쓰다듬고 있다. 해골은 인생의 덧없음, 즉 바니타스(vanitas)를 나타낸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전도서 문구처럼, 기독교의 교훈적인 성격과 연관된 바니타스 기원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말 죽음과 관련된 마카브르(macabre) 미술에서 세밀하게 묘사된 시체를 대신해서 16세기 초 해골이 죽음의 역할을 맡게 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하여 부나 명예의 덧없음, 쾌락의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다루었던 바니타스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절정을 이룬다.

바니타스 그림에는 몇가지 전형적인 요소들로 분류된 대상들이 나타난다. 예술과 학문을 상징하는 책, 지도와 악기,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지갑이나 보석, 세속적인 쾌락을 상징하는 술잔, 파이프와 카드, 죽음과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시계, 촛불, 꽃 등을 들 수 있다. 지금 화려해도 곧 시들어버릴 꽃은 해골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물체를 통해 인생무상을 나타내는 바니타스는 역설적으로 삶의 충만함을 강조하고 있다. 바니타스는 우리가 항상 죽음을 기억하면서 현재에 충실하고 남을 배려하며 선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상속은 자식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망치는 것'이라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카네기,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의 경우에서 드러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예는 편법상속에 혈안이 된 우리나라 대기업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대기업주는 차명주식 배당금으로 개인명의의 작품을 사는 대신 서구의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기부자의 이름을 딴 방을 마련하여 유명한 작품들을 많은 이들이 보게끔 할 수는 없는가. 뿐만 아니라 기업 의존형에서 탈피하여 일반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기부문화가 우리사회에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재단이 주도하는 '1% 유산상속운동'과 같은 시민주도형 기부문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공수래공수거'의 의미를 잊지 않게 될 것이다. 나눔의 즐거움은 삶의 허망함 대신 현재의 충만함을 얻는 지름길이다.

박소영 갤러리분도 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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