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독서왕!"
공부의 기초는 독서다. 독서는 사고력을 높이고 창의력의 바탕이 된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의 공통 분모 가운데 하나가 평소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 하지만 독서의 성과가 곧바로 성적으로 연결되지도 않을 뿐더러 워낙 광범위해 이를 꾸준히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공부가 아닌 놀이로 생각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두명의 독서왕을 소개한다. 이들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독서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윤정현 인턴기자
#전하진((11·대구 매호초교 6학년)군
"거리로 치면 지구 한바퀴(4만㎞)를 돈 셈이죠." 하진이는 지난해 5월부터 8월 말까지 4개월 만에 156권의 책을 읽었다. 쪽수로 치면 무려 4만쪽이 넘는다. 하진이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다는 독서왕. 지금은 오히려 학교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봐 엄마 엄호경(39)씨가 독서를 제한할 정도다.
하진이가 이렇게 독서를 즐기게 된 것은 무엇보다 엄마의 영향이 컸다. 3년 전부터 엄씨는 하진이의 손을 잡고 효목도서관을 찾았다. 엄씨는 "어릴 때부터 책을 사줬는데 경제적 부담이 되다 보니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 습관을 길렀다"고 말했다. 하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책도 많이 읽어주고 책 읽는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는 것. 엄씨는 "평소 몰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 모습을 하진이가 많이 봐왔다"고 했다.
이뿐 아니다. 책을 공부라기보다 놀이 개념으로 생각하게끔 하기 위해 엄씨는 한가지 묘책을 썼다. 책을 빨랫줄에도 걸어놓고 소파나 발코니 등 하진이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면 어디든 책을 흩어놓았다. 집에서 책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든 것. 이런 엄마의 노력 끝에 하진이는 초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책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한창 재미를 붙일 땐 하루에 10권 정도도 읽었다.
1년 전부터는 '운전사' 역할만 하던 아빠까지 가족의 독서 열풍에 합류했다. 아빠의 이런 모습이 하진이의 독서욕에 더욱 불을 붙였다. 이젠 주말만 되면 가족 모두가 도서관을 찾아 책을 빌리는 일이 일상이 됐다.
'독서의 힘'일까? 하진이는 3월 초 어렵다는 동부교육청 영재교육원에 당당히 입학했다. 엄씨는 "지극히 평범한 하진이가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많은 독서량 덕분인지 특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한다"며 "수학 한 문제를 1시간 이상 붙잡기도 하는 등 끈기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엄씨에게 고민도 없지 않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조금씩 학교 공부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독서에만 전념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 엄씨는 "하진이가 지금 책을 많이 읽어놓으면 난이도가 높아지는 고등학교 때 큰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있지만 이제 학과 공부할 시간이 빠듯해지니까 조금씩 독서량을 줄이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호((9·경운초교 4학년)군
지난해 6개월 동안 230권 정도의 책을 읽은 지호. 하루에 평균 한권 이상은 책을 잡는다는 지호의 독서는 사실상 태어나자마자 시작됐다. 엄마 강신해(34)씨는 지호를 낳자마자 '이솝우화'나 '미운오리 새끼' 등의 그림책들을 보여주면서 대화식으로 책을 꾸준히 읽어줬다. 그래서인지 강씨는 "3개월쯤 되니까 '엄마'라고 불러 깜짝 놀랐다"며 "보통 또래보다 말을 일찍 했다"고 회상했다. 지호는 한글을 깨우친 5세 때부터는 스스로 동화책 위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재미에 푹 빠졌다.
지호는 특히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 마법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이 신난다는 것. 가장 좋아한다는 '해리포터 시리즈'는 5번 이상 읽을 만큼 열광적이다. 지호는 "한번씩 기억이 안나는 부분이 생겨 그 부분을 알기 위해 읽다 보면 책 전체를 다시 읽게 된다"고 웃었다. 책 내용에 감정이입도 잘 하는 편. 강씨는 "책을 읽다 보면 혼자서 웃고 울고 원맨쇼를 한다"고 했다.
강씨는 지호가 책을 너무 좋아하니 책값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지호가 초교에 들어가면서 일주일에 1, 2번은 가까운 서부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지호의 독서욕을 충족시켜 주었다는 것.
책을 많이 읽으면서 읽는 속도도 무척 빨라졌다. 강씨는 "가끔 같은 책을 함께 읽을 때가 있는데 나는 아직 다 읽지 않았는데도 지호가 다 읽었다고 책장을 넘기자고 할 때가 자주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대충 읽는 것도 아니다. 휙휙 넘어가는 것 같지만 책 내용의 일부를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대부분 또박또박 답을 한다는 것.
지호는 독서 외에 문화센터에서 드럼이나 축구를 배우고 있다. 남들처럼 학원엔 가지 않는다. 이는 동명고 국어교사인 강씨의 확고한 신념 때문. 강씨는 "또래 아이들처럼 학원을 미리 보내 선행학습을 시키면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리기 쉽다"고 했다. 선행학습은 중 3학년에 들어가서 해도 늦지 않다는 것. 대신 강씨는 "입시 환경에 들어서기 전에 지호가 하고 싶어하는 여러 가지를 경험시켜 주고 싶다"고 했다.
◆두 엄마가 전하는 '자녀 독서왕 만들기 팁(tip)'
▷집 곳곳에 책을 흩어두되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어디에서든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부모가 자녀에게 평소 책을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자녀는 호기심을 갖고 책을 친근하게 생각한다.
▷되도록 학습만화(만화로 된 책)는 못 보게 하는 것이 좋다. 서서히 글자 수가 많고 글자 크기가 작은 책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학습만화를 너무 많이 읽으면 이런 절차를 밟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나 TV 등 다른 놀 수 있는 상황을 없애는 것이 좋다. 심심하고 할 일이 없다면 자연스레 책을 만지게 된다.
▷선물이나 어떤 보상을 줄 때 자녀가 좋아하는 책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책이 재미있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될 수 있으면 완역본을 권한다. 요약본은 작가의 섬세한 묘사나 생각을 전할 수 없지만 완역본은 이것이 가능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책을 많이 읽어준다. 부모가 재미있게 책 내용을 전하면 그 만한 보약이 없다.
▷공공도서관을 애용한다. 바쁘더라도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 손때 묻은 책이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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