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책을 읽는다] 음악가의 삶과 음악

마주침/유정아 지음/문학동네 펴냄/ 1만8천원/393쪽

올해 초, 가지고 있던 음반과 오디오 시스템을 처분하려고 한 적이 있다.

2천장이 넘는 CD와 3천여장의 LP, 그리고 웨스터민스터 스피커와 마크레빈슨 앰프는 마흔의 중반에 가진 거의 유일한 재산이었지만 때로는 무게로, 사치로 다가온 것이 사실이었다. 늘 마음은 비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못난 심성에 부끄러워 결국 인터넷 벼룩시장에 판매 글을 올렸지만 오히려 더 큰 괴로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혼자 생각은 음악을 사랑하는 이가 한꺼번에 음반을 가져가기를 바랐지만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음반을 사러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사꾼들이었고 고가의 음반만을 골라가면서 가격 흥정을 하는 순간, 마치 자식을 파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결국 음반판매를 중지하고 오디오의 무게를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이렇듯 이미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삶의 무게를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이 되어버렸고 차마 버릴 수 없는 일상이 되고 말았다.

매일 아침 9시부터 두시간 동안 KBS FM 1의 'FM 가정음악'을 진행하고 있는 유정아가 쓴 '마주침'은 클래식 에세이이다. 그녀는 이 책이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 말은 음악을 사람이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대부분의 클래식 교양서가 말하듯이 이 책에서 어떤 음반의 좋고 나쁨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음악가들의 삶을 말하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지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녀는 지난해 4월 27일 세상을 떠난 첼리스트 로스토르포비치로 글을 시작하면서 그가 음악외적인 정치적 양심을 위해 싸운 이야기를 통해 왜 그의 연주가 더 고결하고 깨끗한 것이었는지 말한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다.

서점에서 서문을 읽는 순간. 유정아라는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를 읽었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가 스튜디오를 성소(聖所)로 느끼고 세상을 향해 정성어린 음악을 전하면서 죄를 사해 받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서둘러 책을 사들고 서점을 나왔다. 이 책은 그저 아껴둔 차를 음미하듯이 천천히 읽어야만 할 것 같다. 한때, 예술이 이념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념조차도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예술은 분명히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만 하지 않을까? 세상이 우리가 되고 내가 될 때, 아픔은 보듬어지고 슬픔은 나누어지리니, 어찌 세상에 나 혼자만이란 것이 존재하랴! 음악가들의 삶을 읽는 순간 그 음악 또한 진정한 나의 것이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다.

다 읽지 못한 책을 소개함을 용서하시기 바란다. 이제 그녀가 이끄는 음악가의 삶으로 함께 여행을 떠날 것을 권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전 태 흥(여행작가·㈜미래데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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