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달서구 호산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소장 배영호(44)씨는 고객상담을 마치자 곧바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즐겨찾기'를 클릭하자 주요 정치토론 사이트가 줄줄이 이어졌다. 배씨는 대구경찰청 소속 사이버 감시단인 '누리캅스' 회원. 사이트 게시글과 댓글들을 열어보며 선거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글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주소지를 옮기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한표도 주지 말자'는 내용의 글을 발견하자 배씨의 눈과 손이 바빠졌다. 즉시 화면을 저장한 배씨는 "개인적인 주장이라도 널리 퍼지게 되면 문제가 된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소위 '전문 비방꾼'들이죠. 정치 사이트나 선거 관련 기사의 댓글에 유독 욕설이나 비방을 많이 단 네티즌을 보면 동일한 아이디가 많습니다." 손님이 없는 사이 틈틈이 이런 작업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사이버 공간에서 야한 동영상이나 도박 사이트 등을 집중적으로 적발해내는 누리캅스가 총선을 맞아 '공명선거 감시단'으로 변신했다. 특정 후보나 정당 등을 근거없이 비난('후보자 비방죄')하는 네티즌에 대해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3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하는 등 현행 선거법이 인터넷 명예훼손죄를 강화한 가운데 이들 누리캅스는 이른바 '선거 악플러'들을 잡아내기 위해 맹렬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선거에서 활약상을 보인 건 지난 대선 때부터. 대선을 앞둔 지난해 11월 초순 대구경찰청 소속 한 누리캅스가 특정 후보에 대한 근거없는 의혹을 제기한 글 50여개가 실린 화면을 캡처해 경찰에 보고했다. 글을 실은 블로거 L(34)씨에 대한 경찰 수사가 착수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배씨는 "지난해 12월 대선때부터 누리캅스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 총선을 앞두고 40여건의 악성 댓글을 적발해 신고했다"며 "이번 총선이 겉으로는 조용한 듯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댓글이 난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2학년 엄지윤(21)씨는 대구경찰청 소속 누리캅스 178명 중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명이다. 엄씨는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며 "지나치게 상대 후보나 당을 비하하거나 근거도 없는 소문을 퍼트리면 바로 신고한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답게 싸이월드나 개인 블로그가 주무대인 엄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구 선거구 후보들을 특히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누리캅스들은 선거 악플러들을 잡아내기 위해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고, 정치 관련 기사를 샅샅이 찾아 헤매는 동안 인터넷의 부작용을 실감한다고 했다.
김정곤(44·학원 운영)씨는 "인신공격이 너무 심하다 싶으면 (나도) 댓글을 달면서 중재에 나서는데, 그럴 때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쏟아진다"며 "아직 사이버 상에서는 정정당당한 선거문화가 자리 잡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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