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영섭의 올 뎃 시네마]연의 황후

공주가 사랑한 "무사의 운명과 사랑"

그것은 이미 하나의 조짐이었다. 일본 영화'라쇼몽'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구조, 그때마다 청색·붉은색·검은색들이 춤추는 탐미적인 화면, 호수를 박차고 올라가며 하늘로 비상하는 발레같은 동선, 빗속 사원 결투 장면에서 노래하던 빗방울들.'영웅'은 장이모로 대표하는 중국 5세대 감독의 정신이 중국 무협의 방패 뒤에서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한 어떤 징후이기도 했다. 이후 첸 카이거가'무극'을 만들고, 이에 화답하듯 다시 장이모가'황후화'를 발표했지만, 거기엔 이미 어떤 구원도 부활도 없었다.

'연의 황후'를 만든 정소동 감독은 서극과 함께 홍콩 무협물의 대부라 할 수 있는 감독이다. 그가 만들었던 '천녀유혼'이나'소오강호''동방불패'는 낮에는 데모하다 돌 던지는 밤에는 맥주 한 잔으로 시름을 잊던 386세대의 영원한 로망이기도 했다. 흩날리는 왕조현의 옷자락이 삼등분하는 화면의 아름다움, 소오강호의 쟁쟁한 노랫소리, 남자인듯 여자인듯 사람을 홀리던 린칭샤(임청하)의 미소. 그것은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 영화의 정점이기도 했다.

그러나'연의 황후'는 정소동 특유의 역동적인 와이어 액션이 엉성한 이야기에 묻혀 버리며'무극'같은 중국 블록버스터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연의 공주인 연비아와 그녀를 오랫동안 사모해 왔던 대장군 설호와 그녀의 목숨을 구한 단란천의 삼각관계는 그들이 왜 서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지 소문자적인 캐릭터의 묘사 없이, 대문자의 줄거리만을 전달할 뿐이다.

특히 연비아 역의 진혜림은 그 옛날'동방불패'의 린칭샤가 그렇듯 시종일관 갑옷을 입고, 숙적을 제압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는 양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린칭샤보다는 그저 무협식으로 그려진'지 아이 제인'(해군이 되려고 강훈을 펼치던 데미 무어의 박박 깎은 머리만이 기억에 남는)에 가깝게 보인다. 그나마 이 영화를 보는 잔 재미에 가까운 소품은 바로 단란천과 연비아를 태운 열기구의 스펙터클 정도.

개인적으로'영웅'부터 시작돼'연의 왕후'같은 최근의 중국의 무협물들이 아무리 웅대한 스펙터클과 화려한 색감과 물량 공세로 관객을 유혹할지라도, 그것은 요부의 홀림과 같은 공허함이 숨어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원래'협녀'나'충렬도'용문객잔'같은 호금전의 무협 혹은 리안의'와호장룡'이 보여주듯, 중국 무협의 자연은 너무나 투명해서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인간의 몸짓을 덧없게 만드는 특성이 있었다. 관객들을 선동한다기 보다, 은근한 행간의 여백을 벗삼아 헤아릴수 없는 삶의 깊이를 지긋이 응시하게 만드는 초연함이 가슴을 치는.

그런데'연의 황후'에는 빗발치는 화살과, 중화 사상을 상징하듯 늘 중심에서만 봐야 좌우 대칭되는 거대한 미장센과 파도처럼 넘실대는 엑스트라들의 도열하는 군무가 있지만, 정작 중국 무협의 철학,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없다. 정소동 감독은 마지막 연비아의 입을 통해 이후로 전쟁을 금하고 단란천과 함께 했던 낙원이 이곳 연에서도 펼쳐지리라 중얼거리지만, 그것은 직설의 교훈에 가깝게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연의 황후'는 낯뜨겁게도 스스로 몸을 낮춰 자신의 출신이 장이모의 모방이자 창백한 아류작임을 자청하는 꼴이다. 오랫동안 무술감독을 했던 정소동의 중국 무협물로의 귀환치고는 너무나 그 태도가 초라해서, 씁쓸한 뒷맛만을 남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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