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기의 대구 의료계 "환자는 감동에 지갑연다"

▲ 3일 수성관광호텔에서 대구 5개 종합병원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의료복지포럼 주최로
▲ 3일 수성관광호텔에서 대구 5개 종합병원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의료복지포럼 주최로 '대구지역 의료서비스의 질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대구 한 대학병원. 내과에서 진료를 받던 환자 A씨는 영상의학과 검사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영상의학과에 가서 대기했다. 2시간 기다린 끝에 A씨가 의사에게 들은 얘기는 "오늘은 검사하기 힘드니 내일 다시 오세요"가 전부였다.

#서울 한 대형병원. 내과 의사가 외과 의사에게 전화했다. "지금 진료 중인 환자가 외과에서 좀 봐줘야겠는데, 지금 보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힘들겠다고요. 내일은 가능하시고요. 예,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환자에게 얘기했다. "죄송합니다. 내일 다시 와서 검사를 받는 게 시간 낭비 안 하시고 좋을 것 같습니다."

"시설 좋더라." "친절하데."

서울의 소위 '빅5' 병원에 다녀온 환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은 크게 시설 및 장비와 사람, 두 가지였다.

지역 병원의 경우 초기 투자에 수천억원을 들이는 서울 대형병원과 시설이나 장비로 비교하는 것은 사실 무리다. 그러나 친절과 진료 시스템은 바꿀 수 있다. 보통 서울에서는 대구에서 수술받는 데 비해 비용이 2, 3배나 더 든다. 의료비가 대구에 비해 비싸고 교통비, 기회비용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자꾸 서울로 간다. 막연한 신뢰에다 시설도 좋고, 친절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외에 지역에서 올라온 환자들에게 수술 대기 시간을 당겨주는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지역 의료의 현주소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06년 대구에 거주하는 만20~59세 중 대구 및 서울지역 종합병원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205명을 대상으로 대구 5개 대형병원의 재이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다시 이용하겠다'는 응답은 70.3%로 나타났다. 2004년 전국 78개 대형병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의료기관 평가에서 대구 5개 대형병원 평균 점수가 70점으로 나타나 서울 '빅5' 병원 평균 79.4점에 비해 10점 가까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3일 대구의료복지포럼 주최로 '대구지역 의료 서비스의 질 현황과 개선 방안'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도 대구 의료계의 문제에 대한 신랄한 토론이 오갔다.

정원길 대구한의대 교수는 "지역 병원의 의료 수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인력 부족에 따른 서비스 질 저하 등이 대구 대형병원들이 안고 있는 문제"라며 "병원 내 직원 간 생산적 경쟁, 평가를 통한 인센티브 시스템 도입, 서울 지역 병원들과의 의료서비스 경쟁, 해외 선진 병원 의료서비스 벤치마킹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대구파티마병원 권용숙 간호팀장은 "대구 의료서비스가 질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선 가장 먼저 '고객 중심이 아닌 '나' 중심적인 의료인의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며 "자신의 업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모른다'로 일관하는 개인주의 사고와 긴 진료대기 시간에 비해 짧은 진료 시간, 환자 눈 높이에 맞추지 않는 일방적인 설명 등도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살길은 변화뿐

지역 병원이 친절, 시스템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게 지역 의료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거대 자본과 시설 경쟁을 벌일 수는 없지만 우수한 의료진 및 장비를 최대한 활용하고, 친절 교육 등을 통해 다시 찾고 싶은 병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또 진료 및 수술 대기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환자들의 불편과 불만을 줄이는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남대병원의 경우 직원 대상 서비스 교육을 실시하기 전인 지난 2001년엔 직원 태도 등 대인관계 불만이 전체 불만 중 43%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엔 18%로 떨어졌다. 영남대병원 최선호 대외협력팀장은 "의료 서비스 향상은 환자를 대하는 말과 행동 등 태도 개선에서 나온다"며 "이를 위해선 대구 의료인들의 서비스 능력 향상을 위한 공동 서비스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고, 병원고객만족도 공동 조사를 통한 평가와 건전한 경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한 대구의료복지포럼 대표(대구가톨릭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장기 이식 등 서울보다 못한 몇몇 분야를 제외하곤 의료기술에 있어 대구가 서울에 뒤질 게 없다. 대대적인 친절캠페인, 시스템 개선 등을 통해 경쟁에서 이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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