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 보티첼리의 그림 '아테나와 켄타우로스'에는 큰 창을 든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괴물 켄타우로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위풍당당한 여신에게 제압당한 듯 고개를 갸웃이 숙인 켄타우로스는 하반신은 말, 상반신은 갈색 수염을 기른 남성인 半人半馬(반인반마)의 모습이다.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크레타왕 미노스의 왕비가 황소와 사랑에 빠져 낳은 것도 인간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미노타우로스였다. 엄청난 괴력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했던 이 괴물은 결국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半人半獸(반인반수) 신화나 전설은 동서양이 따로 없다. 신화시대 중국 三皇(삼황)의 한 사람이자 농사신인 炎帝(염제) 神農氏(신농씨)는 소 머리에 인간의 몸을 했고, 죽은 자를 염라대왕에게 인도한다는 인도의 牛頭羅刹(우두나찰) 또한 소머리 인간의 모습이다. 이런 신화들은 대개 원시 토테미즘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반인반수 신화가 허황한 옛날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영국 뉴캐슬대 연구팀이 최근 소의 난자와 인간의 유전자를 결합한 사이브리드(Cybrid:세포질 교합 배아)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소의 난자에 인간의 피부세포 DNA를 주입해 만든 사이브리드는 인간과 동물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고 3일 동안 살아있었다고 했다. 지구촌이 들썩거릴 만한 뉴스다. 게다가 연구팀은 다음 실험에서 만들어질 배아는 6일 동안 생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半人半牛(반인반우)의 괴물 탄생 여부를 놓고 세계의 종교계'과학계의 윤리 논쟁이 한층 격화될 판이다. 당장 영국 종교계는 '프랑켄슈타인 실험'이라고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과연 미구에 반인반우의 기형적 존재가 등장할 것인가. 영국 현행 법률은 의학적 연구 목적 아래 사이브리드를 허용은 하되 만든 지 14일 이전에 폐기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줄기세포 및 배아연구를 둘러싼 각국 간 보이지 않는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불룩한 배, 하루 종일 소처럼 우물우물 씹고, 모든 게 느릿느릿한 소인간? 상상만 해도 으스스해진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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