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손길'은 유죄! '눈길'은 무죄?

네티즌 '성적 수치심 유발 기준' 논쟁

성(性)에 관한 논쟁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성폭행부터 성희롱, 성적 수치심, 음란물 등등. 이같은 범주에 때로는 사회적인 성 차별까지 포함되기도 한다. 최근 대법원이 내린 판결이 이런 논란에 대해 다시 한번 불을 지피고 있다.

◆내게 엉덩이를 흔들어 봐

A씨는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가던 중 앞서 가던 승용차가 진로를 비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차를 추월해 세운 뒤 승용차를 부수고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을 때려 상해를 가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이를 제지하려고 하자 시위조로 주위에 운전자 등 사람이 많이 있는 가운데 옷을 모두 벗어 알몸의 상태로 바닥에 드러눕거나 돌아다녔다.

B씨는 주차 문제로 C씨와 말다툼을 하던 중 "술을 먹었으면 입으로 먹었지 X구멍으로 먹었냐"라는 말을 들었다. 화가 난 B씨는 잠시 뒤 다시 C씨의 가게로 찾아가 카운터를 지키던 C씨의 딸(23)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등을 돌려 엉덩이가 드러날 만큼 바지와 팬티를 내린 다음 엉덩이를 들이밀며 "X구멍으로 어떻게 술을 먹냐. X구멍에 술을 부어 보아라"라고 말했다.

앞서 사례 중 하나는 경범죄처벌법 제1조 제41호에 따라 '경범죄', 다른 하나는 형법 제245조에 따라 '음란한 행위'에 해당한다. 과연 어느 것이 음란죄에 해당할까? 에 대해 1·2심은 '공중 앞에서 단순히 알몸을 노출시킨 행위는 음란한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지만 지난 2000년 12월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알몸으로 성기를 노출했다면 보통 사람의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음란 행위로 봐야한다'고 판결했다. 반면 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2004년 3월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타인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경범죄라고 판결했다.

기자는 앞서 사건에 대한 판결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대법원과 같은 결론을 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음란하다거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한다는 부분이 모호하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2001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누드작품 사진을 올려 기소된 미술교사 김인규(46)씨에 대한 재판은 어땠는가? 당초 1·2심은 "보통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5년 7월 이를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너는 음란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심란하다

이처럼 '음란'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54년 대학교수 부인의 외도를 그린 작품 '자유부인'(정비석 지음)은 문학작품의 선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1970년 성냥갑에 인쇄된 고야의 그림 '나체의 마야'는 "명화(名畵)라도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면 음란물이 될 수 있다"는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도 했다. 법원에서 '음란'의 구체적 개념을 제시한 것은 1975년 염재만의 소설 '반노(叛奴)' 때문이었다. 1심은 음란문서제조죄로 유죄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음란의 정의를 "과도하게 성욕을 자극시키거나 정상적인 성적 정서를 크게 해칠 정도로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로 규정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논란은 30년간 이어지면서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1995년), 연극 '미란다'(1996년),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년) 등이 음란의 도마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얼마 전 대법원이 30년 넘게 고수해 오던 음란의 기준을 크게 바꿨다며 언론마다 난리였다.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로부터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성인용 동영상을 포털사이트를 통해 유료로 제공한 김모(45)씨에 대한 판결 때문. 1·2심 재판부는 음란물이라며 유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이 뒤집었다. "주로 성행위와 애무장면을 묘사했지만 성기나 음모의 직접적 노출이 없다"는 이유다. 앞서 사례들을 종합하면 음란에 대해 이런 결론도 낼 수 있다. '성기가 노출'되면 음란하다는 것. 고속도로에서 옷을 벗은 A씨, 홈페이지에 누드 사진을 내보낸 김인규 교사가 그런 이유다. 반대로 엉덩이를 내려보인 B씨(성기는 보이지 않았음), 성인용 동영상(성행위를 연상시킬 뿐 성적부위는 가려졌음)은 음란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깔끔하게 선을 그어주리라 믿었는데, 과연 그런가?

◆당신의 유치함이 내겐 수치심일 수도

다음 주제는 성적 수치심이다. 형법 제245조에 따르면, '음란한 행위'는 보통 사람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음란한 것은 성적 수치심을 야기한다. 반대로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은 음란하다고 말하면 어떨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법원 판결을 보자면 '성적부위의 노출'이 음란의 잣대 중 하나인 셈인데, 반드시 그 정도의 노출이나 자극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진 다른 대법원 판결은 이에 대한 논란을 가중시켰다. 지난달 23일 대법원은 지하철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피고인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기소 당시 적용된 죄명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다른 사람의 허락을 받지 않고,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촬영물을 판매·전시했을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사진에 찍힌 여성의 치마 밑 다리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1·2심은 물론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 부위는 어디인가, 미니 스커트 입은 여성의 다리를 아무나 촬영해서 갖고 있어도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등 논의가 인터넷 토론장을 가득 채웠다.

◆호스트 바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

하지만 도심에서 여성 다리를 집중적으로 찍다가 들켰을 경우, "대법원에서 무죄라는데 무슨 상관이냐?"라고 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성의 다리를 찍은 사진의 경우, 4명이 찍혔는데 그 중 한 명이 치마를 입고 있었다. 전체 사진에서 다리는 3분의 1도 안됐다. 특정 부위를 부각시킨 것이 아니라 '인물 사진'을 찍은 것이다.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라는 증거가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성적 수치심을 자극할 정도가 아니라면 상대방을 찍어대는 것은 무방할까?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면 상관없지 않나? 대법원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다. 네티즌들의 논란은 가해자가 어떤 의도였는가를 떠나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느냐가 중요하다는데 초첨이 모아지고 있다. 성적 수치심을 둘러싼 상황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최근 화제를 모은 호스트 바 사건은 어떨까? 정모(27·여)씨는 새벽 3시쯤 친구 2명과 함께 호객꾼에 이끌려 서울 장안동 한 호스트 바를 찾았다. 남자 접대부 3명을 불러 술을 마시며 4시간가량 놀았고, 술값은 접대부 한명당 팁 10만원을 포함해 60만원이 나왔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접대부 유모(24)씨는 정씨에게 과감한 신체접촉을 시도했고 화가 난 정씨는 유씨를 마구 때려 성형수술을 받은 실리콘 코를 망가뜨렸다. 결국 정씨는 불구속 입건됐다. 조사에서 정씨는 "친구들을 따라 난생 처음 호스트 바에 갔는데, 유씨가 내 가슴을 심하게 만지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해 싸웠다"고 밝혔다. 술에 취해 유씨를 때리기는 했지만 자신도 피해자인만큼 성적인 수치심을 느끼게 한 유씨를 고소하겠다고 했다. 과연 이번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리게 될까.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 "여자 다리 왜 찍나" "원인 제공 왜 했나"…대학생 4명 '미니스커트 설전'

성(性)에 대한 논란은 엉뚱하게 전개되는 양상이 있다. 도심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던 남녀 대학생 4명에게 앞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들은 연인 사이는 아니라고 했다. 간단한 코멘트를 기대했던 기자에게 이들은 불꽃 튀는 격론으로 답해줬다. 남자 2명(장성호·하영석)과 여자 2명(이은주·최가은) 사이에 30여분간 오간 대화를 들어보자. 성을 제외하고 가명으로 처리했다.

이 : 몰래 남의 다리를 찍고 다니는 남자들을 보면 변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 지 뻔하다.

장 : 공감한다. 그런 변태스런 놈들 때문에 보통 남자들까지 한꺼번에 욕 먹는다. 정말 한심해 보인다.

하 : 하지만 원인을 제공한 여성들도 문제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짧게 입는 것은 봐달라는 의미 아닌가?

이 : 웃기지 마라. 내가 옷을 아예 벗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예뻐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입을 뿐이다.

최 : 아니다. 여자가 봐도 지나친 노출이 있다. 남성들의 시선을 즐기는 것 아닌가? 법적 처벌 문제는 아니다.

이 : 처벌할 수 없다고 해서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날 찍어댄다면 참지 못할 것이다.

하 : 그렇다면 넌 미니 스커트 입고 나올 때 등 뒤에 '촬영 금지'라고 써 붙이고 다녀라. 그러면 될 거 아니냐.

이 : 말을 이상하게 한다. 너도 모르게 사진 찍히면 기분 나쁠 것 아닌가? 게다가 성적 상상을 한다면 좋겠는가?

최 : 신문이나 방송에서 여름 도심 풍경을 주제로 짧은 옷을 입은 여성들을 보여준다. 그들도 성적 수치심을 느끼나?

장 : 서로 의도가 다른 것을 한 데 묶으면 안 된다. 남 몰래 찍는다는 자체가 잘못이다. 성적 수치심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 :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면 좀 찍으면 어떤가? 얼굴이 안 나와서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다리만 보고 알 수 있나?

이 : 누군가 내 앞에 서서 얼굴을 빼고 가슴을 찍으면 괜찮다는 말인가? 그렇게 말한다니 실망스럽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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