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공간에는 괴담이 생기기 마련이다.
엄격한 통제와 그곳을 벗어나려는 열망이 강할수록 더하다. 죽음과 맞닿은 곳에서의 공포는 자연스럽게 괴담으로 만들어져 전설이 돼 떠돌아다닌다.
'GP506'은 군대괴담을 그린 영화다.
비무장지대 최전방 경계초소인 GP506. 폭우가 몰아치는 밤. 출입이 불가능한 그곳에서 소대원이 떼죽음 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수색대가 그곳에 갔을 때는 피범벅을 한 소대원 1명만이 도끼를 들고 수색대를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GP506'의 도입부는 긴장감이 넘친다. 미로 같은 지하벙커에는 쥐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고, 검은 벽에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처참한 몰골의 주검들만 널려 있다.
군 최고의 수사관인 노 원사(천호진)에게 주어진 시간은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뿐이다. 몰살당한 시체 속에 참모총장의 아들인 GP장(유중위)이 있어 국방부 전체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아침이 되면 어떻게 사건이 뒤바뀔지 모를 상황이다.
그러나 21명의 소대원 중 생존자 1명에 시체는 19구, 1명이 빈다.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폭우로 끊어진 도로로 수색대마저 GP506에 갇힌 상황에서 노 원사는 사건의 진실을 캐기 위해 시체들 속을 뒤지기 시작한다.
'GP506'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전작 '알 포인트'에서 베트남전에 투입된 병사들의 이야기를 귀신공포로 연결시켰던 공수창 감독은 'GP506'에서도 제복 속에 갇힌 젊은 병사들의 악몽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가장 공포스런 것은 GP506이라는 폐쇄된 공간이다.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젊은 청춘들을 가두고, 죽음 앞에 치를 떨게 한 곳이다. 음침한 복도와 느릿느릿 움직이는 환기구, 녹슨 배관과 시멘트로 뒤덮인 지하공간은 그 자체로도 이미 공포가 스믈스믈 기어다니는 곳이다. 미로 같은 그곳을 카메라가 헤집으면서 관객의 호흡을 가쁘게 만든다.
2005년 벌어진 GP 소대원의 몰살을 그린 실화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실화와는 거리가 멀다. 떼죽음의 원인이 정체 모를 바이러스라는 것이다. 스릴러처럼 보이던 영화는 실종되었던 마 병장일행이 좀비와 같은 행각을 보여주면서 '죽은 시체들의 밤'과 같은 호러영화로 변해간다.
전체적으로 18세 관람가의 끔찍한 영상과 음향을 보여주지만, 이야기의 얼개는 서걱서걱한 허점들을 보여준다. 바이러스에 걸린 부대원들과 그렇지 않은 부대원들의 심리적 갈등을 좀 더 선연하게 보여주고, "이 테이프가 발견되었을 때 우린 모두 죽어 있어야 한다"는 테이프에 담긴 강 상병의 상황을 좀 더 밀도 있게 그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어체의 낡은 대사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라는 노 원사의 고함소리, 부대원들의 절규만 평행선으로 나열하는 통에 바이러스의 정체를 은유할 여유를 잃어버렸다.
병사들을 폭력적으로 몰고 가는 바이러스의 정체는 사실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장치다. 죽음 앞에 놓인 공포, 폐쇄된 공간의 불안감,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침전된 냉전의 기억들은 어떤 바이러스라도 만들어낼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영화는 바이러스의 병리학적 존재감만 부각한다.
그래서 우주와 원자폭탄의 공포, 그리고 폐쇄된 공간과 개방된 공간의 이중성을 절묘하게 은유한 존 로메로 감독의 걸작 공포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는 다른 단순한 궤적을 보여준다.
냉전시대의 마지막 유물인 한국 GP에서 벌어진 것은 살육극뿐이라는 것이 아쉽다.
120분. 18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GP와 GOP
GP(Guard Post)는 경계(감시) 초소를 말하고, GOP(General Observation Post)는 일반 관측 초소를 말한다.
1953년 휴전 당시 남북 양측이 대치해 있던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2㎞ 물러난 지역에 설정된 북측의 한계선이 북방한계선이고 남쪽에 설정된 것이 남방한계선이다. 남북 양측의 한계선 4㎞ 이내에는 출입이 통제되는 완충지대로서, 이 지역이 바로 비무장지대(DMZ)다.
GP는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고, GOP는 밖에 있다. 남측과 북측 한계선 안의 '전초(前哨)'인 GP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곳은 800m밖에 되지 않는 곳도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300m로 설정돼 있다.
비무장 지대 안에는 군부대가 주둔할 수 없다. 그래서 각종 대공화기 탱크 등은 철책선 밖에 있다. 그래서 이 안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민정경찰이라 부른다. 군인인데 경찰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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