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디즈레일리의 교훈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것이 많이 있는데 투표권도 그 가운데 하나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오니 입후보자마다 한 표를 호소하기에 여념이 없고 적어도 이 기간만큼은 투표권은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 그렇지만 60퍼센트를 넘기지 못한 지난 총선의 투표율이나 이번에 역대 최저 투표율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것에서도 보이듯, 이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는 않은 듯하다. 국민마다 동등하게 한 표의 투표권을 가지는 이 보통선거 및 평등선거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역사상 얼마나 큰 희생이 치러졌던가를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일이다.

일찍이 양당정치를 정착시킨 영국의 경우 정치개혁의 큰 흐름을 타고 19세기를 통틀어 세 번의 선거법 개정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부유한 일부만이 선거권을 독점했으나, 이 선거법 개정을 통해서 적어도 대부분의 남성들이 재산이나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투표권을 얻게 된다. 민주주의의 선진국 영국에서도 여성이 투표권을 얻는 것은 20세기 들어와서다. 1832년의 제1차 선거법 개정이 중간계급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개혁조치였다면, 국민의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들이 투표권을 획득하는 계기가 된 것이 1867년의 제2차 선거법 개정이었다. 이 개혁을 통해서 도시노동자가 선거권을 확보하면서 영국의 민주주의는 진정으로 다수 민중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던 것이다.

바로 이 개혁법안 통과를 주도한 인물이 그 당시 집권 보수당의 지도자 벤자민 디즈레일리였다. 보수당은 지주계급과 대자본가 등 기득권세력이 중심이 된 당으로 야당시절에는 여당인 진보당이 추진한 선거법 개혁법안을 좌초시킨 바 있었다. 그러던 그가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집권당이 되자 스스로 전 정권에서 실패한 개혁법안을 다시 입안하여 국회를 통과시켰다. 흥미롭게도 이 법안은 애초 진보당이 제안한 내용보다 한걸음 더 나간, 당시로서는 가장 개혁적인 법안이었다. 그 때문에 보수당 내부에서나 칼라일과 같은 강경 보수세력으로부터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으나, 디즈레일리는 이를 관철시켰다. 당리당략을 떠나서 이것이 민의이고 시대의 정신임을 읽어낸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가 영국의 가장 탁월한 정치인 가운데 하나로 기억되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새로운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다. 당연한 일이고, 현 정권을 지지했든 하지 않았든, 국민이라면 누구나 집권세력이 잘 해서 국운이 살아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정권의 교체로 과거가 송두리째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의견과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통합해나가는 과정에서만 힘을 얻는 정치제도다. 과거 정권에서 한 일도 잘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혼자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이같은 타협과 합의의 산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과거 정권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국정파탄세력'이라고 일괄 매도하는 소리를 듣는 곳에서 살고 있다. 국가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진보정당이 추진하던 개혁법안을 오히려 더 진척시킨 먼 나라 보수정치인의 큰 그릇이 새삼 떠오르는 연유다.

이번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과반수를 넘기느냐, 넘기면 얼마를 넘기느냐가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과반을 넘든 넘지 않든 분명한 것은 정부에 이어 대의기구도 보수 정치세력이 다수를 점하는 국면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영제국의 위세를 떨치던 당시의 영국과 현재의 우리의 상황이 같은 것은 물론 아니다. 밖으로 제국 경영을 원활하게 하자면 국민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고 통합을 이룩해나가야 할 정치적인 상황이 당시 영국에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 한 나라 운영의 기본이 되는 것은 이같은 통합의 힘일 터이다.

영국의 한 보수정치인이었던 디즈레일리가 주는 교훈은 정파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정치의 본령이다. 가령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양극화를 개선하는 일은 정권의 교체여부를 떠나서, 여와 야를 떠나서,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국민의 더 큰 이익에 관계되는 일이다. 새로 구성될 의회가 우리 민족이 마주한 도전에 열린 태도로 임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다. 과연 우리 정치인에게서 디즈레일리와 같은 큰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윤지관(한국문학번역원장·덕성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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