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였던가, 극장에서 할리우드 영화 '十誡(십계)'를 봤다. 성서의 주요 인물인 모세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히브리 백성을 해방시키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청년 모세에서 백발의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 모세까지 영화 속 헤스턴은 성서 속 모세 그 자체로 착각할 만큼 명연기를 펼쳤다.
특히 이집트군이 맹추격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모세가 비장한 표정으로 기도할 때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거대한 물벽 사이 바닷길로 수백만명의 히브리인들이 건너갈 때까지 하늘 향해 두 팔을 높이 쳐든 민족 지도자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몇년 후 극장에서 영화 '벤허'를 봤을 때는 또 다른 감동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로마제국 시대 예루살렘 제일의 귀족인 벤허 가문. 그러나 우연찮은 일로 옛 친구이자 신임 총독인 멧살라의 분노를 사게 돼 가족은 감옥에 갇히고 벤허 자신은 노예선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훗날 우여곡절 끝에 로마시민이 된 벤허는 절치부심 복수를 꿈꾸다 멧살라와 목숨을 건 전차경주에 나선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진일퇴의 접전 끝에 마침내 승리는 벤허의 것이 됐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다.
스펙터클 영화의 대명사격인 이 두 영화는 찰턴 헤스턴을 20세기 최고의 명배우로 우뚝 서게 했다. 큰 키에 근육질의 체격, 윤곽 뚜렷한 얼굴, 강렬한 눈빛의 남성적 카리스마는 스크린을 압도했다.
여하간 '십계'는 종교영화의 금자탑이라 할 만하고, '벤허'는 1960년 제3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12개 부문 중 남우주연상 등 11개 부문을 휩쓴 당대의 超大作(초대작)이었다. 오죽했으면 윌리엄 와일러 감독 스스로도 감격한 나머지 "오 하느님, 정녕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까"라고 외쳤을까.
1950, 60년대 세계 영화계를 풍미했던 찰턴 헤스턴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에 문득 쓸쓸해진다. 그이야 알 턱이 없겠지만 이곳 한국에도 그의 타계 소식에 가슴 한 귀퉁이가 휑해지는 올드팬들이 많다. 향년 84세, 그러고 보니 모세가 이집트에서 히브리 민족을 이끌어낼 때와 비슷한 나이다. 다시 이들 영화의 장면들 위에 그의 얼굴이 겹쳐진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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