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노인 생활관리사 최경숙(44·여)씨는 지난달 말 김모(75) 할머니를 6개월여 만에 다시 만났다. 홀몸노인 생활실태 전수조사에 나선 최씨가 굳이 할머니를 찾은 건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수급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 10년째 파지를 주워 생계를 잇고 있다는 김씨는 "자식 셋이 있지만 생활비는 고사하고 연락조차 없다"며 "새벽부터 종이 주워서 하루 2, 3천원 번다"고 막막해했다. 최씨는 "실태조사를 하면서 이런 분들을 만날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식이 "웬수"인 홀몸노인들
홀몸노인들이 복지사각지대에서 남몰래 신음하고 있다. 자식으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하거나 왕래조차 끊어졌지만 기초수급 보장을 받지 못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손모(74·여)씨는 지난해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식과 연락을 끊은 채 외로운 생을 살고 있다. '자식은 있느냐', '연락처는 뭐냐'고 묻는 최씨를 잔뜩 경계하던 할머니는 살가운 최씨의 태도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자식 도움은 기대도 안한다. 팔지도 못하는 방한칸짜리 집이 있어서 동사무소에서 기초수급 대상도 안된다고 하더라"고 하소연했다.
김모(69·수성구 범어동)씨도 끼니마다 무료급식소를 전전하는 형편이지만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식들은 수입이 불규칙한 일용직이어서 도움을 주기가 어렵다. 김씨는 "공공근로를 하려고 해도 눈이 침침해 일을 나서기 어렵다"고 했다.
단칸 월세방에서 살고 있는 한모(74) 할아버지는 다행인 편이다. 두 아들은 지병으로 병원에 장기입원했고 나머지 두자녀는 아예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지난해 홀몸노인 생활실태 조사때 이런 사실이 밝혀져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다. 한씨는 매월 수십만원의 생활보장비와 틀니·치질수술까지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홀몸노인 4명중 1명만 기초생활수급자
"자식이 멀쩡해도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는 원칙적으로 부양의무자가 없는 가구,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가구에 대해서만 기초수급 대상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 각 구·군 '홀몸노인원스톱지원센터'에 따르면 대구에 거주중인 홀몸노인은 지난해 말 기준 4만5천242명이며, 이중 기초생활수급자는 1만1천175명으로 4명중 1명꼴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전국 65세 이상 홀몸노인 14만2천500여명을 대상으로 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 가족이 있어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다는 응답자가 4명 중 1명(24%)으로 나타나는 등 대부분 홀몸노인들이 자식들로부터 부양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구청 사회복지공무원은 "일단 자식이 있거나 재산이 있는 홀몸노인 경우는 기초수급보장 대상이 되기 어렵다"며 "자식에게 부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성구 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 강은정 사회복지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홀몸노인들에게 도시락이나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해주려고 해도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어서 도움을 드릴 수가 없다"며 "홀몸노인을 돕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전수조사가 면밀하게 이뤄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구를 비롯한 전국의 홀몸노인원스톱지원센터(보건복지부 소속)는 생활관리사로 구성된 현장 조사팀을 파견, 지난해에 이어 올 초부터 홀몸노인들의 생활실태를 조사중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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