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기행] 김훈의 '칼의 노래'⑤

진도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순천에 내려 보성과 장흥, 강진, 해남을 거치는 기나긴 여정이다. 진도 들어가는 길목인 진도대교에서 만나게 되는 '명량해협'은 말 그대로 바다가 우는 '울돌목'이다. 울돌목은 해남군 우수영과 진도군 녹진 사이를 잇는 해협으로 넓이 325m, 수심 20m, 유속 11.5노트에 달하는데 해저의 암초에서 소용돌이치는 급류가 8㎞(20리) 밖까지 바다 울음소리를 낸다. 동지나해에서 밀려오는 거친 바닷물과 황해의 바닷물이 신안 앞바다를 돌고 돌아 울돌목 해협에 이르러 흐름이 급속도로 빨라지고 사나워져 바닷물끼리 일대결전을 벌이면 진도 전역에 비상 사이렌이 아득히 울리듯 바다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진도 사람들은 바다 울음소리를 듣고 산다. 나는 거기에서 통제사의 절실함과 마주했다. 신기하게도 쓸쓸하지 않았다.

명량. 순류와 역류가 뒤섞인 채 수만 년을 뒤채이며 온 그 급물살 위에 내가 서 있다. 함대가 순류에 올라 탄다 하더라도 마침내 올라탄 것이 아니며 때가 이르면 순류의 함대는 역류 속에 거꾸로 쳐 박힐 것이다. 하여 이 바다는 적에게도 나에게도 사지다. 격류 앞에 군사들을 내몰고 그들에게 죽음을 강요할 권리가 내게 있는가.(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부분)

열두 척의 배, 백여 명의 군사, 칠천량 패배의 쓰라림, 그리고 수군을 폐지하라는 선조의 명령.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전장에 나아가는 통제사의 고민의 일단이 드러난 부분이다. 통제사는 왜란이 일어난 이후 단 한 번도 싸움에서 패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그는 패배하는 전장에 부하들을 세우지 않았다. 그것이 선조에게는 왕명을 거부하는 불충의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부하들의 생명이 더 소중했다. 이기는 전장에만 부하들을 내세웠다. 그러나 울돌목 싸움만은 달랐다. 당시 조선 수군은 절망적인 상태였고 통제사 자신도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장에 나간다.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통제사는 사지에 처해야 오히려 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역설로 그 상황에 대응한다.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 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김훈, '칼의 노래' 부분)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살 길이다. 그것은 당시 조선의 현실이기도 했고 통제사 자신의 운명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셈이다. 유속을 활용하고 지형을 이용하여 이겼다는 것은 결과적인 일일 뿐이다. 울돌목의 승리 이면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통제사 자신의 절박함이 존재한다. 그렇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절박함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장애를 넘을 수 있는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 통제사는 선조에게 올리는 장계를 통해 그 의지를 피력한다. 장계의 내용은 평소 임금에게 올리는 통제사의 언어와는 다르다.

아직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신이 있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이순신의 장계 부분)

선조에게 보내는 장계는 사실 스스로에 대한 채찍이다. 선조가 있어서가 아니라 통제사 자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적이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는 표현은 자만에 가득 찬 표현이 아니다. 무너지려는 자신을 안으로 채찍질하는 표현이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이다.

여전히 울돌목의 물살은 빠르다. 통제사의 흔적을 찾으러 온 사람보다는 숭어를 찾아 뜰채를 던지는 낚시꾼이 훨씬 많다.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흘러가는 시간은 지키지 못할 약속들만 만든다. 그래도 지금 삶이 절박하다면, 그래서 현재를 견디기 어렵다면 울돌목으로 가라. 거기에서 통제사의 절박함을 만나라.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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