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그는 서른일곱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림 879점을 남겼다. 고흐는 가난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도 오랫동안 일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그를 귀찮아 하거나 싫어했다. 동생 테오를 빼면 가족도 친척도, 친구들도 그를 배척했다. 고흐는 동생에게 의지했으며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네 돈은 꼭 갚겠다. 돈을 갚을 수 없다면 내 영혼이라도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동생의 품에 안겨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란다'며 죽어갔다.
고흐는 살아서 쓸모 없는 사람이었고, 죽어서 아쉬운 사람이었다. 생전에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팔려도 아주 싼값에 팔렸다. 그는 물감을 아껴야 할 만큼 가난했고, 우편료가 없어 주문 받은 그림을 부치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 '해바라기'는 1987년 런던의 경매장에서 2천475만 파운드(당시 한화로 약 400억 원)에 팔렸다. 고흐가 자살하고 100년이 지난 뒤였다.
불행한 천재화가 고흐. 그의 그림에 대해, 인생의 광기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빈센트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다면 상대는 십중팔구 '아, 그 불행했던 천재화가' 라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동시대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천재화가. 우리가 기억하는 고흐는 그런 화가다. 그래서 누구나 아쉬워하고 알은 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그의 그림은 비싸게 팔린다. 복제본이나 포스터, 광고로 변형된 '해바라기'를 한두 번쯤 보지 못한 사람이 드물 정도다. '해바라기'는 누구나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고, 가장 비싼 그림을 의미한다. 상업적 성공은 이미 오래 전에 확인됐다. 이제 고흐는 작품을 넘어 '미술사적 주제'가 됐다. 우리가 아는 고흐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 '반 고흐'는 고흐를 전혀 다르게 본다. 지은이 멜리사 맥킬런은 재능과 영감, 개성과 광기로 덧칠된 반 고흐의 천재신화는 상업문화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꼬집는다. 위에 언급한 이야기, 지금까지 우리가 들어온 이야기를 깡그리 가짜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고흐가 독창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과거 거장들, 당대 미술가들의 작품과 계속 대화하면서 작품 전략을 세우거나 수정했다고 말한다. 고흐의 작품이 개성적이며 급진적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작품의 질이 고르지 않으며 후기로 갈수록 보수적 질서를 반영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반 고흐 신화화는 그의 작품을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분리해 천재의 산물로 고립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한다. 실제 반 고흐가 구필상회에서 근무한 덕분에 대중의 미술 취향을 알았고, 미술계 흐름과 문제의식에 귀 기울이며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 예술가, 시대를 앞서간 불운한 예술가, 고독한 예술가라는 관념은 모던시대의 유산이라고 말한다. 고흐의 작품은 결코 천재의 산물이 아니며 모던문화의 가치를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데 반 고흐가 이용돼 왔다는 것이다.
예컨대 1980년대에 있었던 몇 번의 주요전시 즉, 아를의 반 고흐(뉴욕, 1984), 생레미와 오베르의 반 고흐(뉴욕, 1986-1987), 브라반트의 반 고흐(스헤르토헨보스, 1987), 파리의 반 고흐(파리, 1988)는 역사적 연구와 상업적 연구가 맞물린 것이며, 모던문화의 가치를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효과를 지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목적이 고흐 신화를 다른 신화로 대체하는 데 있지는 않다. 책은 신화에서 벗어나 고흐를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의 들쭉날쭉한 작품수준, 계속되는 삶의 근거지 이동, 작품에 드러나는 서투름과 긴장, 모순에 앞으로 더 많이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280쪽, 1만6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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