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수많은 명승부의 역사를 쌓아왔고, 그 피 말리는 수 싸움의 전쟁터는 당연히 수십명의 명 지휘관들을 탄생시켰다. 자신의 21년 감독 커리어의 절반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장식했던 명장 김응룡, WBC 4강 감독이자 국민감독으로 불리는 덕장 김인식, 짧은 기간 동안 4번이나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던 지장 김재박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 감독들이 헹가래를 받을 때 시무룩한 선수단을 이끌고 묵묵히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감독이 있었다. 해고를 너무 많이 당해서 이력서의 여백이 모자랄 정도였던 감독이 있었다. '동렬이도 가고, 종범이도 없는' 야구가 너무나 당연했던 그런 감독이 있었다.
윗분들에게 고분고분한 성격도 아닌 탓에 구인자들에게도 인기가 없었던 감독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 팀이 '사상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몰리지 않고서야 쉽게 지휘봉을 잡을 수 없었다. 바닥을 치는 팀을 갑자기 맡아 고군분투로 어느 정도 반석위에 올려놓고 보면 그는 다시 성적 외적인 이유로 해고당하기가 다반사. 몇 년 뒤 또 다른 팀이 '최악의 위기상황'에 직면해 SOS를 외치기 전까지 그는 2군감독이나 코치 등의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경험의 총합이라 했던가. 항상 기적을 요구하는 주군 밑에서 열세에 놓인 병사들을 지휘하다 보니 그의 야구 철학은 어쩔 수 없이 집요하고 절박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2점차로 지고 있어도 1점을 내기 위한 번트를 대고, 고교야구에서나 나올 편법을 쓰기도 하며, 잦은 투수교체로 평균 경기 시간을 늘리는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감독, 열성 팬들도 많지만, 안티 팬들도 더러 있다. 이 감독을 존경하는 팬들조차도 그의 모든 면을 최고로 꼽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스포츠 계는 5위를 할 팀을 2위로 만들어 줄 과외교사보다, 3위를 할 팀을 그냥 3위를 하게끔 이끄는 선생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감독이 요즘 부쩍 세간의 이목을 끌고, 여러 단체에서 그의 지도력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려 드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한 일이다. '일구이무(한 번 던진 공은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그의 철저한 장인정신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히 한 수험생이 불합격할 수도 있다. 진정으로 지역구민과 국가를 위하는 후보가 낙선할 수도 있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그 혹은 그녀와 결혼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온다. 진정이었다면 잠시 변방에 있어도 그들은 돌아온다. 야구는 또, 인생은 오히려 '일구이무'가 아니다. 볼을 던져도 공은 돌아온다. 우승을 못해도 다음 시즌은 돌아온다. 항상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돌아왔던 이 감독. 그래서 그의 도전과 65세의 첫 우승은 모든 대기만성형 인간들에 대한 훌륭한 은유이다. '리더 김성근의 9회말 리더십'이 당신이 야구팬인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한 번쯤 읽어볼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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