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나태한 의원은 미래가 없어야 한다

선거와 관련해 정가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말이 있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떨어지면 인간이 아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만큼 좋은 자리도 없을 것이다. 당선되고 나면 국정을 주무르는 재미에 남들이 우러러보는 권력을 한껏 누릴 수 있고 나쁜 맘만 먹으면 돈까지 모을 수 있다.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직 종사자가 우연찮게 국회의원을 했다가 낙마한 후에는 본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 국회 주변만 맴도는 것을 수없이 보게 된다. 금단증상 때문이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자리인 만큼 낙선하고 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듯, 인간 이하의 참담함을 느낄 만할 것이다.

오늘 밤 투표함이 열리면 삶의 환희를 만끽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자기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귀하신 몸'이 되려면 뒷산 정기를 타고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것쯤은 나이가 들어보면 안다. 천운이 따라주는 사람만 영광의 월계관을 쓸 자격이 있는지도 모른다.

걱정스러운 것은 당선자들이 자신의 천운만 믿을 뿐, 뽑아준 유권자를 돌아보는 데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4년 전인 지난 17대 총선 당시로 시곗바늘을 되돌려 보자. 대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은 12명이었고 모두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 중 임기 동안 어려운 지역경제를 위해 나름대로 뛰었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한번 꼽아보자. 과연 몇명이나 될까. 정치부 기자들은 넉넉잡아 2, 3명 정도를 꼽지만 일부에서는 극단적으로 단 1명뿐이었다고 평하기도 한다.(그 1명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대부분 지역민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더라도 금배지를 유지하고 공천을 받는 데 크게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다. 나아가 대구경북 의원 중에 選數(선수)가 쌓일수록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어깨에 힘만 잔뜩 주고 유권자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거들먹거리는 듯한 이들도 여럿 있었다. 심지어 지역구만 이곳에 두고 서울사람처럼 행세하면서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의원도 있다. 이제 막 당선된 초선의원들까지 예전 선배들의 행태를 닮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만큼 지역 정치인들의 자질이나 수준이 바닥이었다. 솔직히 시민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국회의원들에게 너무나 큰 아량을 베풀어왔다. 지역경제가 낙후되고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져도 정치인 탓을 하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호남지역과 한번 비교해 보자. 호남이나 대구경북이나 특정 정당의 깃발만 꽂아놓으면 당선되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그쪽도 싹쓸이하는데 이쪽도 싹쓸이하면 어떠랴'라는 말까지 한다. 그렇지만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전에 만났던 호남의 한 국회의원은 "주민 등쌀에 숨도 못 쉴 지경"이라고 했다. 지역 이익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는 당장 지역에 불려 내려와 크게 혼나고 꾸중을 듣는다는 것이다. 여론주도층은 물론이고 선거구민들에게 잘못 보였다간 다음 공천은 물건너간다고도 했다. 그런 풍토가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다. 혹자는 두지역의 기질이 다르다고 폄하할지 모르지만 어느 지역의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몇년 전 지역 국회의원 A씨는 호남지역 예산을 깎았다가 한동안 큰 고생을 했다. "해당 지역민과 출신 의원들에게 완전히 '나쁜×'이 됐어요. 지역신문 1면에 제 이름이 커다랗게 나고 한마디로 난리였어요. 다음부터 그쪽 예산은 손대기가 겁났어요."

특정 지역을 본받자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상식 수준의 의정활동을 해달라는 얘기다. 지역민의 마음을 약간이나마 보듬어줄 수 있는 성의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지역을 살리는 데 머뭇거리거나 게으른 의원이 있다면 곧바로 지역에 불러내려 혼쭐을 내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나태한 이들에게는 미래가 없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바로 유권자의 권리다. 지역에서 더 이상 국회의원들에게 아량을 베풀 만한 여유가 없다. 그만큼 절박한 때다.

박병선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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