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카페 기행, 이 곳을 아시나요]5-대구 수성구 '호반'

도심 속에 숨겨둔 '여유'라는 보물

수성관광호텔 앞에서 서쪽 상동 방향으로 벚꽃 터널을 지나 걸어가다 보면 오른 쪽에 수성유원지 내 음식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카페, 호반(HOBAN)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호반(대구 수성구 두산동 926의 3, 053-764-7700)은 1970~80년대에 대학생이었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렀을 법도 한 카페. 대구는 물론이고 부산이나 서울 등 외지 대학생들의 미팅 장소로도 환영 받았던 곳이다.

호반이 70년대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지목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물을 가득 담은 호수를 끼고 있어 그만큼 운치가 있는 데다 수성못이란 상징성 때문에 휴대전화가 없었던 시절, 약속을 하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고급 카페가 드물었던 시절이라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만나 차를 마시고, 음식을 먹은 뒤 수변을 거닐며 데이트 즐기기에 제격이었던 것도 유명세의 바탕이 됐다.

두상(頭相)이 반듯해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박덕(38) 사장은 "아버지가 카페를 경영하던 1970,80년대에는 터가 좋아 이곳에서 선본 사람들이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소문으로 인해 결혼 적령기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를 얻었다"고 했다.

2,3층 유리창을 세로로 가르며 버티고 서있는 300년 된 떡버드나무는 호반의 상징물이다. 봄'여름철이면 동시에 100여명의 손님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이 거목은 호반의 묵은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1970년 당시 제주도에서 가져온 현무암으로 바닥을 한 테라스에는 4명씩 앉을 수 있는 테이블 40여개가 놓여있다. 수성못과 접한 부분에 심어진 느티나무에다 테라스 중간 중간의 살구나무, 라일락 등 고목 10여 그루와 돌하르방, 해녀상은 카페의 역사보다 앞서거나 같이하면서 39년 동안 단골 또는 새내기 손님을 맞고 있다.

테라스에 내려가자 바람과 함께 다가온 라일락 꽃 향기를 접하는 순간, 영국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 라는 시의 첫번째 시구가 떠올랐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여름은 난데없이 소나기를 몰고 슈타른베르거 호수를 건너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벌써부터 야외 테라스 벤치에서는 햇살이 좋아서 인지 가족단위 손님들이 여기저기 앉아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땅에 박힌 조명등과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트 등에다 나무 그늘과 달빛 그리고 그윽한 라일락 꽃향기, 엷게 일렁거리며 내는 수성못의 물결 소리를 담은 테라스는 자연이란 무대의 하모니처럼 아름답고 황홀하기만 하다.

박 사장의 부친인 박풍(67)씨가 여관을 사들여 그늘막을 설치, 사이다 등 음료수와 과자를 팔다가 못이 잘 보이도록 개조해 1969년 양'분식점으로 문을 열면서 카페의 역사가 시작됐다. 처음엔 도랑 위로 놓인 시멘트 다리를 건너 들어와야 했지만 80년대 중반 리모델링 하면서 바로 들어오는 통로를 확보했다. 이후 93년에는 유리벽의 3층 건물로 신축했으며, 95년부터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호반 가(家)는 화가 집안이다. 조부(박명조)께서 고교 미술교사를 했고, 아버지는 경북대 수의학과를 나와 교사를 하다가 카페를 열었는데 박 사장의 어머니와 동생도 현재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신축하기 전의 건물이 더욱 더 운치 있고, 정감이 갔다"고 말하는 박 사장은 "건축물의 트렌드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만큼 현재의 심플함이 손님들로부터 오래오래 사랑 받을 것"이라며 "100년 후에도 고풍스럽고 운치 있는 장소로 보존할 것"이라 자신은 물론 손님들과 약속한다.

95년 카페 운영에 직접 나서면서 요리를 배웠을 정도로 요즘 젊은이 답지 않은 프로정신을 가진 90학번의 박 사장은 외제차 랜드로버 매니아. 그래서인지 뒤늦게 영남이공대 자동차학과에 입학(08학번),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현직은 서비스업이지만 엔지니어의 꿈을 반드시 피우겠다고 자신한다.

수성못 아래 쪽으로 아파트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호반에서 보는 야경은 더욱 더 아름답다. 지난해(올해는 5월)부터는 수성못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악분수로 인해 카페는 거대한'자연 콘서트 하우스'그 자체가 된다. 자연녹지여서 지을 때 20%의 건폐율을 적용받은 터라 정원 만큼이나 주차장도 충분(50대 주차)하다.

이곳 대표 음식은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류. 스테이크의 경우는 한우고기를 써 품질 면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통후추로 맛을 낸 스테이크(3만원)와 토마토해물스파게티(1만5천원)는 주방장 추천요리. 20여종의 음식메뉴에다 커피와 홍차 등 차류 10여가지, 와인 20여종을 준비하고 있다. 가을에 모과를 정원 나무에서 따 직접 만들어 내놓는 모과차는 이집 만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여름철 갑작스런 소나기 등에 대비, 음식 값을 선불로 받는 것도 특색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밤 12시까지.

봄엔 꽃, 여름엔 녹음, 가을엔 과일과 열매, 그리고 단풍, 겨울엔 눈과 얼음 위의 오리 떼 등으로 자연 그 자체가 인테리어가 되는 멋진 카페, 특히 여름철이면 아이들이 직접 매미껍질을 만져보고, 매미울음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자연사박물관 같은 호반. 도시생활에 찌들린 사람들의 휴식장소로 오래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맛있는 집-'들메꽃'

대구 달서구 두류동 성안오피스텔 뒤편에 자리한'들메꽃(053-652-5432)'은 친환경적인 한옥풍의 실내에서 식사와 차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퓨전전통찻집이다.

언뜻 보면 벽면마다 생활도자기가 빼곡해 찻집 분위기가 강하지만, 그 보다는 주인인 윤명이씨가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 정성껏 차려내는 들메비빔밥과 들메연밥의 맛깔스러움에 반하게 된다.

고사리'도라지'표고버섯과 제주산 무를 기본으로 제철 채소 등 7가지 나물을 얹은 비빔밥은 아삭하게 씹혀 절로 입맛이 당긴다. 고추장 대신 파래가루를 뿌려 전체 밥맛의 향긋함을 더한다. 찹쌀에 7가지 곡류를 섞은 다음 은행, 호두 등 8가지 견과류로 영양을 더해 연잎에 싸서 약 30분간 중탕으로 쪄낸 연밥은 약밥이나 다름없다.

곁들어지는 6가지 반찬 또한 감칠맛이 난다. 옛 시골밥상에 자주 나왔던 가죽과 무장아찌는 이 집만의 별미다. 단 반찬 중 육류는 배제돼 있다. 곰삭은 김치는 거창 가조에서 담근 묵은 지다. 이들 반찬만으로도 따뜻한 밥 한 그릇은 뚝딱 비워진다. 주 메뉴 이전에 전채로 나오는 호박죽과 부침개도 식욕을 자극한다.

식사 후엔 다식과 제철 과일, 떡 그리고 차상이 제공되는데 차 종류는 약 50여가지로 손님이 메뉴판에서 정하면 된다. 들메비빕밥 1만2천원, 들메연밥 1만5천원, 차는 종류에 따라 7천~1만5천원. 지하철 2호선 내당역에서 3번 출구로 나가면 쉽게 찾는다. 일요일은 쉰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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