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풍은 '태풍'이었다. 대구경북에서 이번 총선의 최대 키워드였던 박풍이 지난 15대 총선 이후 고착된 한나라당 독식 구조를 깨뜨리면서 그 실체를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이로써 박근혜 전 대표는 정치적 입지를 더욱 굳게 다지게 됐고 앞으로 불거질 친박의원들의 한나라당 복당 논의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
◆박풍의 위력=대구경북 27개 의석중 한나라당은 17석을 얻는데 그쳤다(?). 사실상 참패한 것이다. 반면 친박연대가 4석(대구 서구-홍사덕, 달서갑-박종근, 달서병-조원진, 경북 경주 -김일윤) 친박 무소속 5석(대구 달서을-이해봉, 경북 구미을-김태환, 고령·성주·칠곡-이인기, 군위·의성·청송-정해걸, 상주-성윤환) 등 친박 후보들이 9석을 장악하는 성적을 거뒀다. 이에 따라 지난 1996년 자민련 바람 이후 전 의석을 석권한 16대와 26석을 획득한 17대 총선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한나라당 공천=당선'이라는 공식도 깨졌다. 한나라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그 충격을 "박풍이 이렇게 위력적인지 미처 몰랐다"고 표현했다.
여기에다 당내 친박 당선자(대구동을-유승민, 동갑-주성영, 북을-서상기, 경산·청도-최경환, 구미갑-김성조, 영천-정희수)를 포함할 경우 대구경북내 친박 당선자는 15명이나 된다. 반면 친이계는 줄줄이 낙마해 겨우 6명만 살아남았다. 특히 친이의 핵심으로 당연히 당선될 것으로 예측됐던 경주의 정종복 의원도 박풍의 위력 앞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낙마했다.
사실 박 전 대표는 '복당발언' 이외에 이번 총선에서 친박 후보들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다. 17대 총선 등에서 전국적인 바람몰이를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에 칩거하며 나오지 않았다. 도움이라면 지역의 친박 후보들이 찾아왔을 때 웃으며 맞이한 것 정도였다. 대전의 강창희 한나라당 후보를 찾아가거나 친박 후보들에게 영상메시지를 보내는 간접지원을 하기도 했지만 지역내 친박 후보들에게는 이마저도 하지 않았다. 결국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친박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킨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을 그대로 반증한다는 평가다.
◆박근혜 마케팅=박풍이 더욱 탄력을 받은데는 친박 후보들의 소위 '박근혜 마케팅'도 작용했다. 이 전략이 효과가 있었던지 '너도나도 박근혜', '짝퉁 친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박 전 대표와 인연이 없는 후보들도 친박을 가장하기도 했다.
친박 후보들은 총선 기간 내내 박 전 대표가 공천에서 소외된 점, 한나라당의 공천 부당성을 유권자들에게 집중 홍보했다. 선거 홍보물, 유세차량 등 모든 선거전략을 박근혜로 치장했다. 이해봉 후보는 '이해봉의 낙천, 박근혜의 눈물'을, 박종근 후보는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를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정했다. 조원진 후보는 '박근혜도 속고 나도 속고, 유권자도 속았다"는 말로 민심을 얻는데 성공했다. 박풍 마케팅이 성공을 거두면서 친박 후보들은 선거 막판 친박연대 및 친박 무소속 연대 공동전선이라는 '히든카드'까지 내밀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박풍을 막을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끌려가기만 했다. 선거 막판 대구경북 경제회생을 위한 대형 공약이라는 반전 카드를 내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박근혜 마케팅은 성공했지만 정책선거 실종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도 낳았다. 결국 이번 총선은 친박 후보나 한나라당 모두 박근혜 바람에서 헤어나지 못한 선거였다는 지적이다.
◆민심은 친박을 선택했다=결국 이번 총선 결과는 대구경북이 박근혜 전 대표의 '철옹성'임을 입증한 셈이다. 이번 총선에서 박풍의 위력을 가장 잘 실감케 해준 지역은 소위 대구 달서지역을 중심으로 한 '친박 서부벨트'이다. 달서벨트에 출마한 친박 의원들은 모두 당선돼 이 지역은 '철의 벨트'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의 박종근, 이해봉 의원과 친박연대의 정치신인 조원진 후보가 달서벨트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눌렀고, 이 지역과 인접한 고령·성주·칠곡의 이인기 후보, 구미을의 김태환 후보도 한나라당 후보를 가볍게 눌렀다.
매일신문은 지난달 22일 친박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대구 달서갑과 고령·성주·칠곡의 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친박정서'의 영향력을 분석했다. 그 결과 달서갑의 경우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 전 대표 지지층의 61.1%, 고령·성주·칠곡의 58.1%가 친박연대 또는 친박 무소속 연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었다. 총선에서 박풍의 파괴력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 같은 박 전 대표 지지층의 친박 후보 지지의사는 실제 총선 초·중반 대구경북의 친박 후보들이 한나라당 후보와 접전구도를 형성케 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여기에다 선거 초·중반 형성된 20~30%대의 부동층이 선거 막판 친박 후보들 지지로 돌아서면서 승부는 결정났다.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