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아리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는데, 이번에는 중창에 대해 알아보자. 오페라에서 한 사람의 가수를 위해 만든 노래가 아리아라면, 중창이란 알다시피 두 사람 이상의 출연자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다. 아리아가 불리는 동안에는 오페라의 진행이 중단된다고 전에 말했었는데, 중창은 이와는 대조적이다. 즉 중창은 아리아와 반대로 극의 진행상 매우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 혼자서 객석을 향하여 독백하는 아리아와 달리 중창은 여럿이서 노래하는 것인 만큼 배역 상호간의 의사전달이 중요하다. 이점부터 아리아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그리고 중창이 불리는 동안 극의 진행은 더욱 발전, 전개되는 것이 보통이다. 즉 아리아가 불릴 때 스토리의 진행이 멈추고 주인공의 감정 호소가 절정에 이르는데 반해, 중창을 통해 극은 더욱 유연하게 흐르면서 출연자 상호간의 유대 협조 담합 흥정 음모 대결 등이 적나라하게 제시된다. 즉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극적인 매력은 중창 속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아는 멜로디를 즐기면서 느긋하게 들어도, 중창만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듣는 것이 드라마의 중요한 줄기를 놓치지 않는 길인 것이다. 물론 유명한 아리아의 선율에 비해 중창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중창도 귀에 익숙해지다 보면, 두 가지 이상의 선율이 멋지게 교차되면서, 아리아 이상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오페라에서는 중창들 중에도 2중창이 가장 흔하다. 2중창이야말로 두 사람의 감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경우가 많아 극적으로도 뛰어나며, 음악도 아름다운 곡이 많다.
흔한 예로 베르디의 에 나오는 는 두 남녀가 처음 만나 축배를 드는 화려한 2중창으로 내용은 더욱 흥미롭다. 알프레도는 사랑의 미덕을 찬양하며 순정을 전하지만, 비올레타는 "사랑은 부질없는 것, 사랑 같은 소릴랑은 말고 술이나 마시며 즐깁시다"라고 노래를 받는다. 음악은 같지만 둘의 가사는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푸치니의 에서는 첫날밤에 두 사람이 을 부른다. 미군 장교 핑커톤은 어린 게이샤 초초상을 아내로 맞이했지만 백년해로할 생각은 애당초 없다. 핑커톤이 "조그마한 너를 안으니 꼭 나비 같구나"라고 말하자 초초상은 "미국인들은 나비를 잡아 핀을 찔러 박제를 만든다지요"하면서 자신의 비운을 예견한다. 밤하늘에 퍼지는 말할 수 없이 낭만적인 멜로디이지만 실제 내용에는 이렇듯 암시적이고 복선을 가진 중요한 열쇠들이 숨어 있다.
이렇게 중창에서는 두 감정이 교류되는 경우가 많지만, 서로 상대방의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채 노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두 사람의 멜로디와 화음은 멋지게 조화되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달라서 각자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동상이몽형 중창'이야말로 객석에서 볼 때는 오페라가 주는 매력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베르디의 의 레오노라와 루나 백작의 2중창이 좋은 예다. 레오노라는 연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백작에게 주기로 하지만, 이미 독약을 마신 상태이다. 레오노라는 죽음으로써 백작에게 복수하는 자신의 분노에 찬 심정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모르는 백작은 독약이 퍼지고 있는 레오노라를 껴안은 채, 그녀와 같은 멜로디로 오늘 밤 그녀를 안을 수 있게 된 남자의 희열을 노래하는 것이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정신과 전문의)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