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1년 6개월이란 연구결과가 미국에서 나온 적이 있다. 평생 가자던 굳은 사랑의 맹세는 이 생물학적 방정식 앞에서 무색해진다.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서는 불행한 여인 피아가 나온다. 사랑이 식어버리자 남편은 그녀를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마렘마 언덕의 한 성에 유폐시켜 서서히 죽도록 만든다. 이 얼마나 잔혹한 사랑의 결말인가.
영국작가 서머싯 몸은 학창시절 피아의 이야기에서 감흥을 받아 1925년 '페인티드 베일'이란 소설을 발표했다. 사랑의 배신과 이를 이겨내려는 남자의 이야기를 질기고 절절한 인연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34년 전설적인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영화로, 1957년에는 엘리노어 파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개봉된 나오미 와츠와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페인티드 베일'은 50년 만에 다시 나온 작품이다.
1925년 영국 런던. 충동적이며 도도한 키티(나오미 왓츠)는 차갑고 조용한 성격의 세균학자 월터(에드워드 노튼)를 만난다. 키티는 숨 막히게 닦달하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이 없으면서도 월터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둘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중국 상해로 온 키티는 월터와 달리 유머러스하고 친절한 외교관과 사랑에 빠진다.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챈 월터는 콜레라가 극성인 오지 산골마을로 키티를 데려간다. 자신의 믿음을 깨고, 외간 남자를 가슴에 품은 아내에 대한 배신감에 대한 복수극이라고 벌이듯이 말이다.
삭막한 극한 오지에서 둘의 사랑은 시험을 거친다. 남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키티는 난생처음 수녀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진실된 사랑에 눈을 뜨고, 처음 냉정하던 월터의 시선도 차츰 부드러워진다.
서머싯 몸이 파이의 이야기에 매료된 것은 부부라는 것이, 또 사랑이라는 것이 예측하기 어려운 감정의 모험이고, 시험대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해와 신뢰라는 측면도 있지만 언제든 배신과 복수의 칼날에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것이 부부다.
키티는 월터에게 고함지르며 항변한다.
"인간은 바보 같은 현미경보다 훨씬 복잡해요. 예측하기도 어렵고 실수도 하고 실망도 한다고요. 그러니 그만 비난해요." 현미경 속 콜레라균에만 매달리는 남편, 무관심과 냉담으로 일관하는 남편에게 '제발 다시 출발선에 서 달라'는 주문이다.
'페인티드 베일'은 꽃과 세균의 이미지가 교차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사랑이 달콤할 수도 있지만, 언제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상징이다.
꽃 장식으로 시작된 결혼이 세균처럼 붉은 이혼 도장으로 결말을 맺는 경우를 간혹 본다. 공허한, 또는 덧칠된 페인티드 베일에 가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의 영혼을 자주 걷어주어야 하는 것, 또한 사랑의 의무 아닐까.
김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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