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총장님, 지금 좀 만나야겠습니다. 어디 계세요."(한나라당 모 국회의원)
"지금 중국인데요. 왜 그러십니까."(우동기 영남대 총장)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30분 전에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어요. 총장님이 대구 서구를 맡아주세요. 후보 등록일이 촉박하니 당장 귀국하시면 좋겠습니다."(모 의원)
지난달 23일 오후 우동기 영남대 총장은 뜬금없는 '귀국 권유' 전화를 받았다. 중국 양저우대에서 열리는 '세종학당'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22일 중국 출장길에 오른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일단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전화를 끊었지만 어리둥절했다. 그 한통의 전화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전화를 끊고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호텔에서 인터넷 검색을 했어요. 강 대표의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 뉴스가 뜨더군요. 아차 했습니다." 순간 우 총장의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채워졌다. '한나라당이 왜 나를 지목했을까? 총선 출마가 혹여 독이 든 성배가 되지 않을까?'
"사람 마음이 참 묘하더군요. 대구경북이 텃밭인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부터 막상 출마 권유를 받고 보니 솔직히 없던 욕심도 생기더군요."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도는 대구지역인지라 우 총장의 욕심은 당연지사일 터. 더욱이 당시에는 홍사덕 친박연대 후보의 서구 출마 선언이 있기 전의 상황이었다. 우 총장은 한국에 있는 대여섯명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대부분 사람의 반응은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놓고 무슨 고민이냐는 것이었다.
"대구 서구에 의성 사람들이 많이 살아요. 지역에 어느 정도 지명도도 있고 고향이 의성인 사람을 찾다가 나를 낙점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자연스레 귀국행 비행기 시간표까지 검색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걱정도 앞섰다. 총장 임기가 1년이나 남았는데, 개인의 영달을 위해 학교를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실리'와 '도리' 사이에서 5시간쯤 헤매다 그는 '도리'를 택했다고 했다.
"출마를 권유한 의원에게 그날 자정쯤 전화를 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미안하다고 했지요. 그러고 나니 솔직히 시원섭섭했어요. 인생에 몇번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날려버린 건 아닌지 생각도 들었지만 결심을 굳히고 나니 홀가분했어요."
우 총장이 고사한 서구 선거구의 한나라당 공천은 이종현 경북대 교수가 받았다.
이 5시간짜리 단막극을 취재하러 이달 8일 그를 찾았을 때, 그는 신장결석 치료차 병원에 누워 있었다. 몇시간 뒤 병세가 호전됐다며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그에게 "당시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전화 속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직 학교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약속된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개인 영달만 좇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아요?"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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