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t 덩치들의 살과 뼈가 부닥친다. 거친 숨과 흐르는 침, 뿔이 부대끼는 소리는 공포스럽다. 그러나 싸움장을 벗어나면 순한 본성을 되찾는다. 야성과 가축의 두 얼굴을 가진 싸움소. 그들은 어떻게 길러지고 싸우며, 생을 마감할까.
◆싸움소, 이렇게 길러진다
올해도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천변에서는 청도소싸움축제(4월 12~16일)가 열린다. 이달 4일 싸움소 양성소인 청도군 각남면 싸움소관리센터를 찾았다. 이곳에는 싸움소 94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소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했다. '끄억'거리는 소리는 일반소의 울음보다 훨씬 높고 날카로웠다. 이른바 '고래빼기'. 싸움소가 힘을 과시하려고 내는 울음소리이다.
센터 입구엔 거대한 원형 도보기가 설치돼 있다. 소의 등에 매고 빙글빙글 도는 장치로 일종의 러닝머신이다. 소들의 기초 체력을 다지기 위한 기구. 이곳 소들은 1, 2세짜리 송아지와 전성기를 맞은 7, 8세짜리가 대부분이다. 한살짜리 송아지라고 해도 600kg이 넘는 거구. 최고령 소는 18세인 '번개'다. 사람으로 치면 팔순에 가깝다. 변승영 청도공영사업공사 경영사업팀 반장은 "번개는 1990년대 후반 절대강자로 군림했지만 이제 경기에 나설 수 없다"며 "청도소싸움의 위상을 높인 점을 감안해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기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싸움소 먹이로는 콩과 보리쌀, 사료 등이 주재료인 '화식'(쇠죽)이 선호된다. 대회를 앞둔 시점에서는 달걀이나 강장제, 십전대보탕 등 온갖 보양식을 먹인다. 보양식 중에는 '개소주'가 최고로 꼽힌다. 소들의 하루는 오전 5시 시작된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되새김질을 할 시간을 준 뒤, 오전 9시 30분부터 원형 도보기 걷기와 타이어 끌기, 타이어 박기, 구보 등 훈련을 시작한다. 훈련이 없는 소들은 오후 늦게까지 일광욕을 즐긴다. 일광욕을 하지 않으면 소의 지구력이 약해지기 때문. 어린 싸움소는 약한 소와 싸움을 시키면서 자신감을 키워준다. 소싸움의 기술은 머리밀기와 뿔치기, 목감아 돌리기, 들어 밀치기 등 다양하다. 하지만 사람이 인위적으로 가르치지는 않고 실전을 통해 소 스스로 터득한다. 싸움소로 자라나려면 보통 3, 4년이 걸린다.
◆싸움소는 따로 없다
싸움소의 혈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싸움에 유리한 체형과 성질을 가진 소들은 송아지때부터 구별이 된다. 소 주인들은 생후 7개월이 돼 우시장에 나온 수송아지 중에서 '될성부른 떡잎'을 골라낸다. 눈이 작고 눈두덩이 두꺼우며 목이 길어야 합격. 도축장에 끌려간 소 중에서 기사회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청도소싸움대회 특 갑종에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칠성'이 그런 경우다. 몸무게가 1천100kg에 이르는 칠성은 4년 전 변승영 반장이 도축장에서 구해와 싸움소로 키웠다.
싸움 잘하는 소는 목이 길고 굵으며 가슴이 넓다. 다리는 짧고 엉덩이가 등보다 낮으며 앞다리 사이가 넓은 게 좋다. 몸통과 꼬리는 길수록 좋다. 몸이 길면 유연성이 좋고 꼬리가 길어야 방향 전환과 균형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뿔 모양은 ▷하늘로 치솟은 노고지리 뿔 ▷일자형태인 비녀뿔 ▷뒤나 아래로 젖혀진 재뿔 ▷앞으로 휜 옥뿔 등 4종류로 구분된다. 가장 높게 쳐주는 것은 노고지리뿔과 옥뿔이다. 하지만 국내 싸움소의 70~80%는 비녀뿔이다.
국내 소싸움대회에는 한우만 출전할 수 있다. 그러나 한우 모두가 '누렁이'는 아니다. 한우의 빛깔은 3종류다. 누런 한우와 검은털이 섞여 있는 칡소, 제주 재래종인 흑모(黑毛)의 혈통을 이어받은 검둥이가 있다. 싸움소의 95%는 누런 한우이고 칡소나 검둥이는 국내에 10여마리에 불과하다.
소의 품종 개량이 이뤄지면서 덩치도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변 반장은 "15년 전만 해도 싸움소가 기껏 커야 600kg이어서 631kg만 돼도 무제한급에 속했다"며 "요즘은 적어도 700~800kg이기 때문에 가장 작은 병종도 660kg에 이른다"고 말했다. 소의 체급은 참가종별로 660kg 미만은 병종, 750kg 미만은 을종, 820kg 미만은 갑종, 그 이상은 특갑종으로 분류된다.
한우만 소싸움을 하는 건 아니다. 일본과 베트남, 멕시코 등에서도 소싸움이 있다. 다만 국내 소싸움대회 규정상 한우 혈통만 출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종(異種) 격투기를 보긴 힘들다. 그러나 미국이나 프랑스 등 외국산인 국내소와 한우 간 이벤트성 싸움을 통해 유추하면 외국소가 한우보다 전력이 약하다는 게 종사자들의 평가다. 덩치는 크지만 목이 약하고 지구력이 부족하다는 것. 하지만 일본의 화우는 전투력이나 싸우는 방식이 한우와 아주 비슷하다. 종자 개량을 통해 한우보다 덩치가 큰 경우가 많다.
◆싸움소의 최후
전국적으로 싸움소는 800여마리에 이르는데 가장 많은 곳은 청도(180여마리)다. 싸움소의 거래는 경매 등과 같은 절차도 없고 주인 간의 흥정을 통해 이뤄진다. 싸움소의 가격은 나이, 체격, 기량, 입상 경력 등에 따라 제각각이다. 대개 3천만, 4천만원 선에 거래되지만 최고 7천800만원에 거래된 경우도 있다. 이번 청도소싸움대회 을종에서 우승후보로 꼽히는 '비호'의 경우 2억원의 매매 제의가 있었지만 주인이 팔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량이 좋은 소를 구입해 각종 대회에 출전시켜 상금을 받은 뒤 되파는 일도 허다하다. 싸움소가 슬럼프를 겪으면 아예 주인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경기를 잘하던 소가 싸움에 많이 져 기가 죽으면 아예 싸움을 피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긴다는 것.
싸움소의 최후는 서글프다. 대개 10세가 넘으면 기량이 떨어지고 싸움소로서의 수명이 다하게 된다. 전투력이 떨어진 싸움소는 대부분 도축장으로 넘겨져 도살된다. 육질이 좋지 못해 고기값만 쳐준다. 주인이 오랫동안 정을 들여 키웠거나 전적이 화려한 소들은 도축장행을 피하기도 한다. 종자우로 쓰거나 늙어 죽을 때까지 키우기도 한다는 것. 한때 명성을 날렸던 '번개'도 아직 관리센터에서 살고 있지만 극히 드문 경우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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