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시도마다 대선공약 발굴 사업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대구시 기업지원본부장실. 김상훈 본부장과 몇몇 참모들이 각 정당들에 요구할 10대 공약과제 선정 작업을 하면서 답답해하고 있었다. 기존에 나왔던 정책들이 아닌, 시민들의 눈길을 확 끌만한 참신하면서도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뭔가가 없었기 때문.
이 때 누군가 '100층 빌딩'을 제시했다. 대구에도 100층 빌딩이 생긴다는 사실은 생각만해도 뿌듯한 것이었기에 당장 참석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일단 아이디어로 채택됐다. 참신했고, 건설뿐만 아니라 지역 산업 전체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만하니 경기부양 효과도 만점.
그러나 실현가능성이 문제였다. 과연 누가 지으며 지어 놓은들 입주가 제대로 될까. 결국 이 아이디어는 고위간부들의 토론을 거치면서 일단 보류됐다.
'대구 100층 건물 과연 들어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국내 주요 도시들에서 벌어지는 '마천루 경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은 용산에 152층(620m)짜리 오피스빌딩, 상암동에 130층짜리 빌딩이 들어선다. 인천도 송도에 151층(610m) 빌딩이 이미 발주돼 있다.
부산은 롯데가 자갈치시장 주변 구 부산시청 자리에 120층짜리 호텔을 짓는 것을 비롯해 100층 이상 빌딩 신축 추진 4건, 구체적 검토 1건 등 5건에 이른다. 제2의 두바이가 될 꿈에 부풀어 있다.
이들 도시들이 초고층 건물 신축에 매달리는 것은 초고층 건물이 도시 위상을 높여줄 뿐 아니라 관광 및 주변 개발이라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지표상으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심정적으로 3대 도시라고 자부하는 대구는 이들 도시들과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몇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주상복합 아파트 붐을 타고 수성구 두산동에 57층짜리 주상복합 SK리더스 뷰와 수성구 범어동에 55층짜리 위브 더 제니스가 공사중에 있지만 상업, 업무용 빌딩 중 최고층은 중구 덕산동 25층짜리 삼성금융플라자(1996년 신축)이다. 100층은 고사하고 20층 이상 비주거용 건물이 대구 전체를 통틀어 10여개에 불과한 실정.
대구에서도 초고층 빌딩 건립에 대한 기대수준의 전망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현재 신축을 계획 중인 상업 빌딩 중 최고층은 범어동 대구법원 앞 50층짜리 쌍둥이 빌딩.
모 시행사가 지난해 7천㎡의 부지 매입 작업을 거의 마쳤으며 시공사를 선정하는 대로 오피스 전용으로 50층짜리 타워 두 개를 건립할 계획이다. 하지만 '50층'으로는 타 도시와의 마천루 경쟁은 물론 일반인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따라잡기도 역부족이다.
지역 경제계는 100층 빌딩의 희망을 동대구 역세권 개발에서 찾고 있다. 초고층 건물을 신축할 수 있는 입지 여건이 뛰어난데다 신축 이후 빌딩 임대 수요가 가능한 곳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 외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수성구 범어네거리와 2011년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가 열리는 수성구 월드컵 공원 배후지 및 돔 야구장이 생길 경우 재개발이 가능해지는 침산동 야구장 부지와 재정비 사업을 앞두고 잇는 도심지 상업 지역 등도 가능성이 있다.
지역 시공사 관계자들은 "대기업이 없고 지역 경제력이 취약한 단점을 안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지혜를 모은다면 100층 빌딩이 가능하다"며 "컨벤션센터와 국제 회의장 기능을 갖추고 시청사나 산하 기관을 비롯해 대구상의와 대기업 지역본부 등이 입주한다면 시너지 효과로 인해 100층 건물 수요를 창출해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비록 대선 공약 선정 과정에서 무산되기는 했지만 대구시도 '100층 빌딩 건립'에 대해서는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대구시는 올해 말까지 동대구 역세권 개발 사업자를 선정한 뒤 구체적 개발 계획을 수립할 때 다시 한번 시도를 할 예정이다.
그러나 걸림돌도 있다. 동대구 역세권은 비행 6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22층 건물까지만 신축이 가능, 국방부 등 관계 기관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또 건축법상 건축물 높이가 경계를 접한 도로나 공원 등 '건축이 금지된 공지 폭의 1.5배 이상은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을 손질도 해야 한다. 서울 부산 인천이 가능했던 것은 한강이나 바다를 끼고 있어 이를 탄력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
이에 대해 최명환 건축사는 "대구는 방사선 도로 구조에다 비행장을 끼고 있어 현실적으로 60층 이상 고층 건물 건립이 제약을 받지만 의지만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보다는 100층 건물을 지을 경우 과연 수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더 큰 장애물이다. 대형 건축주가 나서지 않는 것도 사실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가능성은 많다. 대구가 U대회나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대구월드컵경기장 때문. 건설 당시 3만, 4만 규모로 지어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장래를 내다보고 7만석 규모의 다목적 경기장으로 만든 것이 주효했다.
대구상의 임경호 조사홍보부장은 "대구 상징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다양한 수요 창출 논의가 나올 수 있다. 영남권 신공항이 건설되고 대구경제자유구역이 본격 조성되면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들이 대구로 눈길을 돌릴 때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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