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옷이 한풀 한풀 벗겨진다. 사내의 손이 그녀의 온몸을 훑고 지난다. 여인의 몸은 점점 붉고 푸르게 변한다. 환희에 찬 그녀는 이미 한 송이의 꽃이 됐다.
10일 오후 대구보건대 본관 3층 대회의실. 세계적인 보디페인팅 아티스트인 어니스트 위저(42·Ernst Wieser·사진 오른쪽)씨의 손놀림 하나하나에 그날 모인 100여명 학생들 눈길이 따랐다. 아름다운 인체에 빛나는 화려한 색상 덕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눈에는 무지개가 들어앉았다.
그는 올 8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보디페인팅페스티벌 2008'의 열기를 지피기 위해 특별히 이 대학에 초청됐다.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를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
이날 위저씨는 2시간 동안 보디페인팅을 직접 시연하는 등 보디페인팅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학생들에게 강의했다. 강의를 마치고 나타난 위저씨는 "대구 학생들의 보디페인팅에 대한 진지함과 관심에 놀랐다"고 했다. 또 "세계보디페인팅 페스티벌이 유럽을 벗어나 처음으로 이곳에서 열리는 데 대한 걱정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스무살에 처음으로 보디페인팅을 접했다. 이후 20여년 동안 살아숨쉬는 캔버스를 떠날 수가 없었단다. "물론 보디페인팅보다 미술이 작업하기 더 쉽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마음에 안 들면 버리고 다시 그리면 되잖아요. 하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모델을 버릴 수 있나요? 하하."
게다가 보디페인팅은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도중에 쉴 수가 없다. 보통 대여섯 시간 동안 견뎌야하는 모델의 고통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번은 작업중에 모델이 실신하는 일도 있었다고. 그러던 차에 작업중 모델의 생리현상은 어떻게 해결할까? 라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웬만하면 화장실에 안 가는 게 좋지요. 작업이 있는 날에는 물이나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못하도록 해요. 그래도 급하면 어쩔 수 없잖아요. 조심조심 갔다오라고 합니다."
그는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모델과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것이 미술과 달리 보디페인팅이 살아있는 예술이란 점이다. "보통 작업을 하기 6개월 전부터 작품 구상을 합니다. 테마가 결정되면 모델을 찾아 나서지요. 딱 맞는 모델을 찾기란 쉽지가 않아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하루종일 모델과 많은 얘기를 나눕니다. 보디페인팅은 아티스트 혼자만의 예술이 아니라 모델과 함께 만드는 예술이지요."
그렇다면 보디페인팅 아티스트들이 선호하는 모델 체형이 있을까? 그는 "대체로 남자는 건장하고, 여자는 날씬한 체형이 물론 좋다. 하지만 작품 콘셉트에 맞는 체형이 있기 때문에 아티스트마다 선호 체형이 변한다"고 했다. "흑인은 아주 날씬한 체형이 유리해요. 검은 피부색에 물감을 입히기 때문에 색 표현이 좋으려면 뚱뚱하면 별로입니다. 반대로 백인은 조금 살이 있는 유형이 좋지요."
그래서 위저씨는 자신의 작업실에 항상 10명의 다양한 체형의 모델이 상주한다고 했다. 그는 여성모델을 대상으로 작품할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작품을 할 때 이미 그들은 이성이 아닙니다. 벗은 여체를 어루만진다는 성적인 긴장감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압박감이 더 크지요." 그의 대답이다.
위저씨는 '대구 세계보디페인팅페스티벌 2008'에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한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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