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에서] 기본에 충실하자

나의 고향은 경북 경주시 양동이다. 지금은 민속마을로 지정돼 많은 관광객이 다녀간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다. 가끔 농약병에 쓰인 글자를 묻곤 했다. 크면서 아버지가 글자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모습에서 무의식적으로 무엇이든 기본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엿보였다.

군에 가서 수송병이 돼 운전 교육을 받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군인이 지켜야 할 수칙을 모두 외웠다. 나는 그것이 군인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암기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 교육기간 3개월 동안 군인수첩을 다 외웠다.

자대에 배치된 어느날 중대장이 "내무생활의 목적을 숙지했으니 내무생활의 의의도 숙지하라"는 국방부 지침이 왔다고 했다. 그러곤 "혹 내무생활의 의의를 말해 볼 중대원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예! 이병 이원수." 중대장의 목소리가 떨어짐과 동시에 외쳤다. "좋아! 말해봐." 나는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긴 문장을 큰소리로 외쳤다.

"다른 것도 할 수 있어?" "예! 군인이 숙지해야 할 기본은 모두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중대원 앞에서 군인수첩을 외웠다. "수송병은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만 외칠 줄 알았는데 이렇게 투철한 기본을 갖출 줄이야"라며 중대장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뒤 나는 입소문이 났고 부대 안 모든 장교와 사병, 군무원 등이 한번쯤 근무해 보고 싶어하는 도서실 관리병이 되었다. 이 때부터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이 후 기본은 나의 삶의 지표가 되었고 교육철학이 되었다.

지금 학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대학입시다. 어떤 입시제도든지 기본을 준비하면 걱정이 없다. 학생의 기본은 뚜렷한 목표와 자신감, 끈기다. 공부의 기본은 어휘력이다. 어휘력은 독서의 기초이고, 독서는 국어의 기초이며, 국어는 모든 과목의 기초이다. 공부 방법의 기본은 머리로 생각하고, 귀로 들으며,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고, 남을 가르치는 것처럼 입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다.

교사는 가르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외국에 가지 않고도 영어 회화를 잘하는 방법은 영어 교과서 본문을 모두 외우는 것이다. 나는 EBS로 매일 하루 한번씩 듣기 시험을 친다. 거실에 TV를 없애고 그 자리에 컴퓨터를 놓아 교육용으로 제작된 영화를 알든 모르든 계속 듣곤 한다. 이것은 말문이 트이는 영어 회화의 기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과목마다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EBS방송 도움을 받으면서 학교 수업을 듣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숟가락으로 떠 먹여주는 수동적인 공부방법은 기본이 아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자기만의 방법이 공부의 기본인 것이다.

지금 이 사회는 기본이 실종되어 있다. 음주운전자는 칼을 든 강도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 모두 기본을 찾아야 한다. 기본이 갖추어진 사회는 활기도 넘치고 사람 사는 맛도 생긴다.

이원수(경운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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