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21세기 여성성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1982년 출간된 '메가트랜드'에서 21세기를 여성(female), 감성(feeling), 상상(fiction)이 주도하는 3F 시대, 그리고 1990년에 쓴 '메가트랜드 2000'에서는 예술의 부흥과 여성리더 시대의 도래를 예측했다. 현 시점에서 그가 예상했던 것들은 거의 적중했다. 그가 말하는 '여성'은 독단적이거나 권위적이기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태도와 유연한 사고를 통해 보다 창조적으로 세상을 이끄는 힘, 즉 긍정적인 '여성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래 여성의 시각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하는 예술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다음달 초부터 퐁피두센터와 테이트모던이 공동으로 기획한 루이즈 부르주와 전시가 파리와 런던에서 동시에 열린다. 96세란 노령에도 불구하고 예술영역의 확장을 멈추지 않는 그녀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지목되고 있다. 권위적이고 부도덕했던 아버지로 인해 유년 시절 받았던 정신적인 충격과 상처가 그녀의 예술세계를 형성하게 된다.

'아버지의 파괴'는 핏물이 가시지 않은 동물 내장 같은 형태들로 가득 찬 방에서 일종의 엑소시즘을 행하는 작품으로, 작가는 이곳에서 자신의 가정교사와 노골적인 성행위를 벌였던 아버지와 관련된 추한 기억을 파괴하려고 한다. 그녀는 '밀실' 시리즈에서 은밀한 욕망의 공간인 동시에 감옥과 같은 공간을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천을 기워 만든 헝겊인형을 통해 비로소 오래된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부드럽게 포옹하고 있는 커플상에서 드러나듯이, 조각조각 해체되었던 몸뚱어리를 한 땀 한 땀 꿰매어 하나로 합치면서 작가는 마침내 억압의 대상이었던 여성성을 해방시켜 자유와 평화를 찾게 된다.

아네트 메사제와 소피 칼도 여성의 삶과 실재, 내밀한 기억과 자전적 요소로부터 출발하여 예술이 지닌 소통과 치유의 기능을 부각시키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이 두 여성은 각기 2005년과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2회 연속 가장 주목받는 작품을 선보였다. 현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아네트 메사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위에서 예를 든 세 작가들은 창작행위를 통해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잔인하고 어려운 점들과 화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지난 세기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의 사회·정치·경제 체제에서 여성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되었다. 이를 토대로 21세기 여성성은 유연함과 열린 사고로 화합과 포용의 시대를 펼치는 원동력의 중심이 될 것이다.

박소영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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