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극 '그 이름은 아버지였습니다'

1960년대 중국 격동기 배경 세상 모든 아버지의 이야기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피를 파는 남자가 있다. 그는 가정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피를 판다.

연극 '그 이름은 아버지였습니다'의 배경은 1960년대 중국. 주인공 허삼관은 피를 안 팔아본 남자. 하지만 피를 팔 정도의 건강을 갖추지 못한 남자는 여자를 얻을 수 없다는 삼촌의 말을 듣고 피를 팔기 시작한다.

피를 파는 데는 요령이 있다. 생피를 그냥 팔다가는 몇번 팔지도 못하고 쓰러져 죽는다. 매혈꾼들이 커다란 물바가지를 들고 다니는 것은 물을 많이 마시기 위해서이다. 피를 팔러 가는 날은 아침을 먹지 않고, 배가 아플 때까지, 이뿌리가 시큰시큰할 때까지 물을 마신다. 피를 팔기 전에는 오줌을 누지 않는다. 피를 가능한 묽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를 팔고 난 다음에는 보혈과 혈액순환을 위해 볶은 돼지간과 데운 황주 두냥을 꼭 마신다.

중국 소설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이 희극적인 연극은 그러나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다. 국공합작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동기를 지날 때, 노동으로만 먹고살 수 없을 때 남자는 처자식을 위해 피를 팔았던 것이다.

허삼관의 피 팔기는 처자식을 먹이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첫째 아들 일락이는 아버지 허삼관을 닮지 않았다. 아내 허옥란이 결혼 전 사귄 남자 하소용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남의 자식을 키우는 남자라며 허삼관을 놀린다. 허삼관은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아들 일락이까지 남의 놀림감이 되자 아버지는 분연히 일어선다. 그는 사람들의 기대대로 아들 일락이를 내쫓는 대신 식칼을 치켜든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허삼관은 식칼로 자신의 팔을 그어 피를 내고, 아들 일락이의 팔을 그어 역시 피를 낸다. 그리고 두 팔을 맞붙여 피를 나눈다. 그리고 외친다.

'똑바로 보시오. 이 피는 내가 칼로 그어서 나온 것이오. 그리고 이 피는 내 아들 일락이의 피오. 이제 우리는 피를 나눈 부자요. 당신들 중에 다시 한번만 일락이가 내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칼로 베어 버릴 테요.'

허삼관은 아들 일락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 그 일이 있은 후 누구도 아들 일락이를 놀리지 못했으며, 아들 일락이는 어떤 서러움도 겪지 않았다. 후에 일락이가 농촌 생산대에 편입돼 간염을 얻어 죽어갈 때, 허삼관은 피를 팔아가며 아들이 입원한 상해로 향한다. 굶주림과 매혈로 지쳐 거의 기듯이 상해로 향하는 허삼관의 모습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문화대혁명기 화냥년으로 찍힌 아내가 각종 비판대회에 끌려 다니지만 허삼관은 아내를 버리지 않는다. 버리기는커녕 배고픈 아내에게 몰래 음식을 갖다 준다.

연극 '그 이름은 아버지였습니다'는 피를 팔아가며 격동기를 견뎌낸 남자의 이야기다. 더불어 신산의 세월을 살아낸 세상 모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연안내=5월8일∼10일/대구문화예술회관 대극장/A석 1만5천원. B석 1만2천원. C석 1만원/단체(10인 이상) A석 1만2천원. B석 1만원. C석 8천원/대구시립극단 606-6322. 티켓링크 1588-7890.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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