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일본군, 제암리 주민 학살

1919년 4월 15일, 3·1운동 직후 경기도 수원군(지금의 화성시)의 제암리에서 일본 군인에 의한 주민 집단 학살사건이 발생했다. 오후 2시경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일본 육군 중위가 이끄는 일본 군경은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제암리 주민 29명을 제암리 교회에 몰아넣고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또한 일본군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불까지 질렀다. 또한 민가 31채에 불을 질러 여러 주민을 살상했다. 가까스로 살아난 한 젊은이에 의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캐나다 출신 선교사인 스코필드가 제암리로 달려가 끔찍한 광경을 사진에 담아 '수원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스코필드는 '민족대표34인'의 한사람인 석호필. 이후 제암리사건은 1959년 4월 순국기념탑이 건립되면서 23명이 희생된 것으로 공식화되고 있다. 그러나 제암리사건에서 희생된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은 37명. 당시 사건을 목격하고 증언한 기록은 희생자의 수를 37명으로 확인하고 있다. 특히 23명의 희생자수는 일제의 축소 보고기록을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 제암리 학살현장의 유적은 1982년 사적 제299호로 지정됐다.

▶1865년 링컨 미 대통령 피살 ▶1991년 지방의회개원, 30년 만에 부활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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