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육 프리즘] 돋보기로 종이 태우기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요. 방학이 아닌 때는 학원 한두 곳만 다니기로 했는데 지금은 언어, 수학, 영어 합쳐 다섯 군데 다니고 있어요. 평일에는 자율학습 마치고 늦은 밤에, 토일에도 오전, 오후 다 학원에 가야합니다. 학교 숙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학원 숙제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주일 내내 정신없이 엄마 차에 실려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왜 그렇게 학원을 자주 바꾸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창회만 갔다 오면 다른 엄마의 말만 듣고 학원을 옮기자고 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문제집이든지 끝까지 풀어본 것이 없어요. 제가 필요한 공부를 혼자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요. 엄마를 좀 설득시켜 주세요." 어느 고2 여학생의 절규에 가까운 푸념이다.

우리 모두는 돋보기로 종이를 태워본 경험이 있다.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양질의 돋보기와 햇볕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빛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해 돋보기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때 돋보기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집중력과 종이에 불이 붙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공부나 꿈의 실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학생의 푸념을 돋보기로 종이 태우는 것에 견주어 보자.

먼저 돋보기의 성능은 대개가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특별하게 하자가 있는 불량품이 아니라면 제작사의 세속적 명성과 돋보기의 성능 사이에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문제집, 어느 학원, 어느 선생이 더 좋은가 등은 매우 중요하지만 일정 기준에 이르면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햇볕이 가장 강렬한 시간대에 빛을 모아야 한다. 밤 10시 이후 시간이나, 토요일에 학원에 다니는 것은 흐린 날 종이 태우기와 같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밤낮없이 빛을 모으라고 다그친다. 밤에 돋보기를 들고 빛을 모으려고 하는 학생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 어리석고 딱한 군상들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란 점을 한번쯤 생각해 보자. 한낮 햇볕이 가장 강렬한 시간대에 초점을 잘 맞추어 집중적으로 빛을 모으고, 밤이나 흐린 날은 쉬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돋보기나 종이를 계속 흔들어 대면 빛을 한 곳에 모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결과를 중시하고 빨리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관행에 젖어 있는 우리는 끈기 있게 무엇에 몰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일에 조금 발을 담그고 있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즉시 빼 버린다. 인텔사의 앤드류 그로브 전 회장은 "세계화 시대에는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한 분야에 진득하게 전심전력하라는 말이다. 단일한 목표를 향해 일정기간 극도로 단순해 질 수 있는 사람, 필요한 시간대에 폭발적인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

교육평론가·송원교육문화센터 원장 윤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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