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굿바이 IMF

88올림픽 개최 이후 산업화'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며 '기적의 경제'라는 찬사를 받아온 한국은 97년 11월, 어쭙잖게 동남아發(발) 외환위기에 휘말린다. 환율이 위험수위를 넘어서자 미국은 한국은행에다 "외환을 좀 더 방출하시죠"라고 정중하게 권고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대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였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적어도 250억 달러는 될 것이라고 믿었던 미국은 외환이 바닥났다는 대답에 경악했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인 한국의 곳간에 달러가 없다니…. 한국이 갖고 있는 달러로 발등의 불을 끄려 했던 미국은 한국이 되레 위기의 불쏘시개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렇게 부랴부랴 IMF 한국사무소가 개설됐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따지고 분석할 겨를도 없이 국가위기 상황을 넘기기 위해 들여온 IMF 구제금융은 엄청난 대가를 요구했다. IMF 총재인 '캉드시'라는 생소한 이름이 두려운 존재로 부각되고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낯선 용어가 사회를 뒤덮었다. IMF 요구대로 회사 문을 닫으라면 닫았고, 구조조정 명분 하에 근로자들을 거침없이 잘라냈다. 자존심을 짓밟힌 국민은 장롱 속 금반지를 내놓기 시작했고 이윽고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범국민 '금 모으기' 운동이 전개됐다.

그런 열정 덕분인가. 한국은 2001년 8월 IMF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IMF는 여전히 우리에겐 두려운 존재였다. IMF가 발표하는 경제전망과 충고는 우리에겐 '경제 교과서'였다.

그 IMF 한국사무소가 오는 10월 문을 닫는다고 한다. 도저히 사무실을 운영할 수 없어 구조조정(?) 차원에서 폐쇄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토록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던 IMF가 이제 역으로 구조조정의 무대에 오른 것이다. 살림살이가 어려워 한국사무소가 갖고 있던 금까지 내다 팔 정도였다고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금으로 나라를 일으키려 했던 우리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역사는 돌고 도는가. 사실 IMF 한국사무소는 1964년에 설립됐다. 이후 한국경제의 착실한 성장으로 87년 사무실이 폐쇄됐었다. 그러다 11년 만에 다시 설립됐고 10년 후 다시 폐쇄되는 것이다. IMF가 남긴 교훈은 有備無患(유비무환)이다. 어쨌든 굿바이 IMF, 다시는 초청하지 않을 테니….

윤주태 논설위원 yzoote@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