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서른한살 패션 여기자의 두 가지 욕망

스타일/백영옥 지음/예담 펴냄

'칙릿'은 젊은 여성을 겨냥한 영미권 소설을 뜻한다.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속어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을 결합한 신조어다. 90년대 중반에 나온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시작이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섹스 앤 더 시티' 등이 대표작들이다.

'chick'이 속어적 의미를 가지다 보니 명품에 목을 매는 젊은 여성의 속물적 근성을 상업적 문학으로 포장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일과 사랑, 욕망은 굳이 '예쁜 젊은 여성'의 전유물은 아니다. 하나의 시대를 읽는 문화적 흐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국적 칙릿 소설 하나가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백영옥의 '스타일'이다.

패션지 8년차 여기자 이서정. 패션지에서는 잡탕 파트인 피처팀이다. 알맹이인 패션과 뷰티를 빼고 문화, 음식,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인터뷰를 도맡아야 하는 '똥 덩어리'팀이다. 까탈 부리는 배우를 인터뷰하거나 성미 고약한 레스토랑 조리장을 취재하는 등 만만치 않은 기사만 배당된다.

나이 서른한살. 30퍼센트 세일하는 옥돌매트가 필요한 나이의 그녀에게 어느 날 편집장의 특명이 떨어진다. 최고의 요리 칼럼니스트 '닥터 레스토랑'을 창간호 특집으로 취재하라는 것이다. 음식칼럼 하나로 유명 레스토랑을 초토화시킨 이 요리평론가는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이름은커녕 나이도, 주소도, 성별조차 알지 못한다. 알고 있는 단 하나는 메일주소, 그것도 매번 바뀐다.

패션과 기자세계는 야생과 같다. 치열한 경쟁이 매일 매일 목을 조르는 직업군이다. 소설의 주인공도 자신의 정체성을 다독거려야 하고, 경쟁에 지지 않기 위해 현실과도 타협해야 한다. 그러나 욕망은 꿈틀거리고 사랑도 버려둘 수 없고, 일도 쳐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거기다 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여성으로 당해야 하는 힘겨움도 만만찮다.

이러한 설정은 칙릿의 대표적인 '전장' 묘사다. 내면에서도 명품 백과 구두에 대한 욕망과 함께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착한 욕망 사이에서 흔들린다.

설정은 고통스럽지만 글은 잘 읽히는 것이 또한 칙릿의 묘미다. 음식과 패션, 섹스 등의 세계를 수다스러우면서 쿨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칙릿의 명랑성이다.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도 스타벅스의 카페라떼처럼 테이크 아웃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혁명이란 몸 사이즈가 55에서 44로 줄어들거나, 키가 160에서 170으로 늘어나는 일뿐이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나는 기부를 한다. 이미 나사가 1천개도 더 빠졌을 거란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하지만 별 수 없다. 굶주려 뼈만 남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지고, 새로 나온 마놀로 블라닉을 보면 그게 갖고 싶어서 잠이 안 온다.'

'박우진, 그는 내 인생에서 5분 동안 같은 공간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5분은 내겐 5년처럼 느껴졌다. 나는 혼자서 박우진을 50분이나 기다렸다. 그 50분은 내겐 조선왕조 500년보다 긴 시간이었다.'

추악함이 덕지덕지 묻은 현실 속에서 진정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고민과 그 고민을 자신 속으로 끌어안으려는 태도는 '스타일'의 기본 자세다. 작가 자신이 패션지 여기자로 일했던 경험담을 토대로 그린 소설이어서 더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현실을 대단히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자신의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 체 게바라의 혁명과 '다이어트 혁명'을 비교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그 솔직함 말이다. 336쪽. 1만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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