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오래전 산벚나무/박이화

이른 봄날도 늦은 봄날도 아닌 계절에

늙지도 젊지도 않은 여자

이미 반백의 사내와 봄 산에 듭니다.

그 사내 홍안의 복사꽃도 잠시 말로만 탐할 뿐

하 많은 봄꽃 다 제쳐두고

백발보다 더 부시게 하얀 산벚 아래

술잔을 기울입니다.

어쩌면 전생의 어느 한때

그의 본처였기라도 한 듯

그 사내, 늙고 병들어 돌아온 남자처럼

갈수록 할말을 잃고

그럴수록 철없는 그 여자

새보다 더 소리 높여 지저귑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적막한 산중,

드문드문 천천히 백발의 꽃잎 푸스스 빠져

그 사내 머리 위로 쌓이고,

이윽고 그 여자 빈 술병처럼 심심히 잠든 동안

사내만 홀로 하얗게 늙어 갑니다.

비로소 저 산벚

참 고요히 아름답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