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천년송의 서슬푸런 정기는 경외감을 자아내고 울진 소광리 대왕송은 지조 높은 선비처럼 꼿꼿한 자태를 자랑한다. 흰 눈에 덮인 설악산 무학송은 구름 속에 몸을 감춘 한 마리 학을 닮았다.
1년의 반을 산에서 보내는 산 전문 사진작가 장국현(66)씨가 전국의 노송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전을 갖는다. 매일신문사·국립대구박물관회 주최로 21일부터 5월 12일까지 국립대구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리는 '소나무 사진전'에는 불굴의 기상, 우아한 자태, 고매한 품격을 자랑하는 명송들이 다 모였다.
생활 사진을 찍다 1989년 처음 찾은 백두산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명을 받은 뒤 산 전문 작가가 된 장씨는 재선충 때문에 소리없이 죽어가고 온난화로 설 자리마저 잃어가는 소나무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사진 작업을 해 왔다. "한반도가 아열대화 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100년 후에는 소나무가 한반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소나무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천연기념물, 보호수, 신송(神松) 등 기록으로 남겨야 할 소나무를 찾아 전국 산하를 누빈 그는 지금까지 150여점을 작품으로 남겼다. 이 가운데 28점을 골라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소나무 작품 전시로는 처음이다.
산을 위대한 스승으로 섬기며 살아온 장씨에게 소나무는 훌륭한 친구다. "신송을 만나면 애인을 만난 것보다 더 반갑습니다"고 말하는 그는 엄격한 잣대로 친구를 고른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면 찍지 않는다. 백두산을 20번 찾았지만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소나무는 한그루뿐이다. 가지를 칼처럼 뻗은 채 푸른 천지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가 유일하다.
어렵게 발견한 소나무를 사진으로 옮기는 과정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울진 소광리 대왕송을 7년째 찍고 있는 장씨는 사진 한 컷을 찍기 위해 1, 2주 정도 소나무 옆에서 먹고 자며 대화를 한다. 인고의 시간을 넘어 속된 표현으로 미치지 않고는 하기 힘든 작업이다.
그의 작품 속 소나무는 하나같이 살아 있는 정기를 내뿜고 있다.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생생한 모습을 담기하기 위해 초대형 카메라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3.5cm 필름 대신 12cm 필름이 동원된다. 나무 결이 살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큰 소나무를 실물처럼 포착한 까닭에 작품도 대작이다. 주를 이루는 1~3m짜리뿐 아니라 6m짜리 작품도 있다.
장씨는 "하늘의 뜻에 따라 하늘의 정기를 받아 산과 소나무를 찍기 때문에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면 좋은 피사체를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전시를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는 길을 모색한다. 1989년 불우노인돕기를 시작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는 사진전을 꾸준히 열고 있다. 이번 전시 수익금도 난치병학생돕기에 사용된다.
소나무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솔바람' 회원으로 소나무 보호 운동도 펼치고 있는 장씨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소나무 사진과 함께 백두에서 한라까지 명산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책을 펴냈다. 영감(靈感)으로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답게 책 제목을 '신기(神氣)'로 달았다.
한편 사진전 부대행사로 25일 오후 2시 국립대구박물관 대강당에서 전영우 국민대 교수의 '소나무 특강', 박희진 예술원회원의 '소나무 시낭송', 소나무 가야금 연주 등이 펼쳐진다. 053)766-6056.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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