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이 달라도 '너와 나'라는 장벽이 사라지고 있는 일본. 피부색 장벽이 붕괴되는 원동력은 가히 시민단체의 힘이라고 부를 만했다. 일본은 자국의 외국인 등록자만 전체 인구의 1.55%(197만3천명·2005년 기준)로 10년 전에 비해 45.8%나 늘었다. 하지만 다문화·다인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어울림의 향연'은 자연스러웠다.
◆정부 주도 No, 시민단체의 힘=지난달 21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다문화 공생 프라자'. 330㎡(약 100평) 남짓한 사무실은 세계 188개국 언어로 적힌 팸플릿으로 빼곡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나 만화로 소개된 팸플릿에는 이주 외국인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시민단체를 모두 소개했고, 중국 베트남 호주 미국 캐나다 영국 등 각국 신문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인터넷을 배우고 싶다"는 월마트 전 매니저 리챠드 웨스카(60·미국)씨는 이틀 전부터 이곳에서 관련 정보를 얻고 있었다. 한달 전 미군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 온 베트남 여성 주옥란(24)씨도 카피라이터 직업을 얻기 위해 이곳에서 관련 시민단체를 물색 중이었다.
'다문화 공생 플라자'에서는 일본 전역에 점조직화된 시민단체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곳을 찾는 외국인만 한달 평균 4천명. 신주쿠 외국인 인구 10명 중 1명이 이곳에서 시민단체별 교육 커리큘럼, 수업 진도, 각국별 최신 소식 등을 배워갔다.
이곳 야나기다 후미코(42·여) 과장은 "'다문화 공생 프라자'는 일본 전역의 시민단체와 연계돼 이주외국인에게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며 시민단체의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외국인 정책을 국가에 맡기면 각종 행정절차상 불편이 많지만 시민단체가 앞장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외국인학교=같은날 오후 3시쯤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 후레아관'. 피부색이 전혀 다른 20여명의 아이들이 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필리핀에서 온 에츠얀(9·여), 탁구 시합 중인 류엔(11), 일본인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엠마(12·여·캐나다)도 함께 어울리며 국경을 잊고 있었다.
일본에 살고 있는 누구나 거리낌없이 찾을 수 있는 이곳의 이름은 '후레아'로 '만나다'는 뜻이다. 후레아관이 다인종의 만남의 장소로 자리매김하면서 '다문화정책 모범사례'로 명성을 얻었고 가나가와현에 '외국인의회'까지 출범시키게 됐다.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운영해 만든 '시민사회의 힘'이 다문화·다인종의 자연스런 섞임을 창조했다.
이곳 관리자인 마리(32·여·필리핀)씨는 "가나가와현 시민단체들은 지역의 작은 학교에서부터 마을 구멍가게까지 연계돼 자국인, 외국인 차별없이 서로를 돕고 있다"며 "'당신과 나'라는 벽이 사라진 이유도 삶 속에 녹아든 다문화 정책이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외국 이주민들이 일본에 쉽게 적응하도록 돕는 시민단체는 이곳뿐만이 아니다. 다문화 가정 2세를 위한 방과후 학교 교사들, 병원이나 보건소 통역원들도 시민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이다.
지난 20년간 일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재일동포 김유철(47)씨는 "일본 다문화 정책의 핵심은 정부 주도가 아닌 자발적인 민간 주도의 운영"이라며 "일본이 전세계에서도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도 그 눈을 국가 밖이 아닌 국가 내부에서부터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 도쿄·가와사키시에서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다문화가정 2세 백진훈 참의원
봄비가 일본 열도를 촉촉이 적시던 지난달 22일 오후 1시. 취재진은 일본 도쿄 나가타조 참의원 회관 329호실을 찾았다. 일본 민주당 내에서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문제와 다문화 정책에 관해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백진훈 (50·민주당)참의원을 만났다. 그 역시 경북 경산 출신의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 2세다. "인간존중이 바탕이 되는 다문화 정책이 중요하다"는 백 의원은 "정부, 시민단체, 시민의식이란 세 꼭지점이 서로 견고하게 연결될 때 선진 다문화 정책 구현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 다문화 정책의 현주소는?
▷일본 역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공생'이라는 화두로 다문화 사회에 대비한 여러 정책을 펴고 있으나 완벽하지는 않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언어, 문화의 차이 등으로 이주민들을 이방인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위로부터의 정책이 아닌 아래에서의 다문화 포용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조직적으로 구성돼 이주민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
-'다문화 공생'의 성공적인 실현 방안은?
▷ 다문화 공생사회의 실현을 저해하고 있는 주요인은 이민자들에 대한 '선입견' '배타성' '관심·지식의 결여'를 꼽을 수 있다. 이 모두가 그들에 대해 모르는 탓에 생기는 무지의 산물이다. 나 자신도 이민자가 처음에는 흑백의 두 색깔로만 보였지만 다문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부터 이들이 하나의 컬러(color)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형태든 다문화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을 통한 이해가 중요하다. 이는 다문화 교육을 통해 얻을수 있다. 어릴때부터 지속적인 다문화 교육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궁극적 다문화공생사회 실현에 대한 가능성?
▷역사적으로 일본은 한국, 중국 혹은 구미에서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세계 각국에서 결혼, 일자리, 학교 등을 찾아 수많은 외국인들이 현재 일본에 노크하고 있는 '제 2의 메이지 유신' 시대를 맞아 과거와 같이 일본은 다문화공생사회를 잘 실현해 나갈 것이라 본다.
임상준기자
♠ '공생 프라자' 야나기다 과장
"문화엔 우위가 없고 서로 대등하다는 마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해요."
지난 20일 일본 동경 신주쿠 '다문화 공생 프라자'에서 만난 야나기다 후미코(42·여) 과장은 "다문화 정책의 출발점은 외국인도 자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문화 정책은 공존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질 때 빛을 발한다"고 운을 뗐다.
야나기다 과장은 '다문화 공생'이 실현되는 사회를 강조하면서 "각 나라의 다문화 정책도 우열이 없고 단지 보완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재 한국에서 펴고 있는 다문화 정책과 관련, "일본이 한국보다 이민자 역사는 더 오래됐지만 한국에서 배울 점도 많다"며 "법안 등 추진력에서는 한국을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은 천천히 꼼꼼히 일을 진행한다. 일본은 한국의 추진력을, 한국은 일본의 기초를 배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자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이 살아갈 낯선 땅의 언어부터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언어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불이익을 극복하고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언어습득이 아주 중요해요. 말이 가능해야 경제적 자립심도 키울 수 있는 법입니다."
임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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