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민간의료보험회사 보험 가입자인 한 여성이 열이 40℃까지 오른 18개월 된 딸을 데리고 가까운 병원으로 간다. 그러나 병원은 그 보험사와 계약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한다. 제발 치료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거절당하고 결국 보험사 계약 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이미 딸의 심장은 멈춰 있었다. 여성은 차갑게 식은 딸을 안고 말한다.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가 최근 국내에서 개봉됐다. 무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미국 민간의료보험제도의 부조리함과 폐해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교통사고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다가 구급차 사용 허가를 사전에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급차 비용을 내야 한다. 병에 걸려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승인이 나지 않아 결국 숨을 거둬야 했다. 손가락이 잘렸지만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봉합을 포기하거나 직접 꿰맨다. 무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미국 의료보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식코'의 개봉과 함께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대선 기간 중 이명박 대통령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발언으로 촉발된 보험제 논란이 한동안 잠잠하다가 '식코' 개봉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 민간의료보험의 허와 실은 무엇이고, 도입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민간보험제
우리나라 국민은 아플 때 국내 어느 병원을 가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아무리 아파도 가입할 수 있고, 치료받을 때 차별받지 않는다. 의료기관과 약국 등이 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해 정당한 이유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사회보험 형태로 운영하는 제도가 바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국민건강보험 하나뿐이다. 물론 민간보험회사들이 건강 관련 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보험회사와 의료기관 간의 직접적인 계약 관계는 아니다.
반면 민간보험제도는 민간보험회사와 의료기관이 직접적으로 계약을 맺고 보험 가입자에게 상품에 따라 의료서비스와 보험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보험료를 많이 내면 질 높고 폭 넓은 고급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보험이냐 민간보험이냐' '의무 가입이냐 선택 가입이냐'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을 구분할 수 있다.
◆당연지정제와 민간보험제의 장·단점
건강보험은 보험공단이 가입자로부터 보험료를 받은 대로 다 돌려준다.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내면 누구나 평등하게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에 저소득층은 적게 내고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험재정 악화, 보험 적용 범위 제한, 가입자의 높은 치료 비용 부담, 국가의 병·의원에 대한 직간접적인 통제 등의 약점이 있다.
민간보험제가 도입되면 정부의 경우 건강보험에 따른 재정부담을 줄일 수 있고, 국민은 고급 의료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 선택권 제한과 저수가 구조도 개선 가능하다. 그러나 민간보험은 회사 수익 극대화를 위해 보험료는 많이 받는 한편 지급률은 낮추고, 심사 및 지급 승인 등을 건강보험에 비해 훨씬 까다롭게 할 수 있다. 특히 저소득층, 노인층,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 등에 까다로운 가입조건을 제시하거나 높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가입을 의도적으로 배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제력이 있는 가입자들이 고급의료기관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 민간보험으로 몰리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건강보험 위축으로 이어져 서민 비용부담이 더욱 증가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민간보험 도입 가능성
오리무중이다. 현재로선 민간보험이 당장 도입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의료계, 시민단체 간 대립이 팽팽하고 정부 또한 내부 마찰을 빚고 있어 힘의 균형이 어디로 기울지 미지수다. 대한의사협회는 당연지정제가 획일적인 의료서비스를 조장하고 국민의 의료서비스 선택권이 배제돼 질 높은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는 데 문제가 있다며 건강보험 완화, 민간보험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건강세상네트워크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민간보험이 도입될 경우 저소득자와 병약자의 가입 제한 문제, 의료 이용 양극화 등 소비자 피해를 이유로 강력 반대하고 있다.
정부 부처 간에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인수위는 의료단체의 요구를 수용, 의료공급자가 다양한 비보험 의료서비스를 개발해 제공할 수 있고, 국민은 다양한 의료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당연지정제 완화를 검토했었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기획재정부는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해선 민간 의료보험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한 반면 보건복지가족부는 "공적 보험의 근간이 흔들려선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보여 정부 부처 간에도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는 상태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