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정희 마케팅]밥상도 정치판도 향수 자극

▲대구 동구 둔산동에
▲대구 동구 둔산동에 '웃음이 묻어나는 자리'라는 간판을 내건 식당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과 글을 보러 오는 손님들이 많다.

구 동구 둔산동 K2관사 입구에 위치한 한 식당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억하러 오는 손님들이 유난히도 많다. 구미 생가와 선친 산소를 찾거나 청와대에서 육영수 여사와 함께 한 모습 등 5,6점의 사진이 있고 서예에도 능통했던 박 전 대통령의 글까지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정란 사장은 "7년 전 가게 문을 열 때부터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는 사진들"이라며 "이 집에 가면 박통 사진이 많아 찾아오는 손님들이 여럿 있다"고 했다.

내년이면 서거 30주년을 맞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박통 마케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마케팅 전략에는 박 대통령의 사진과 글을 '모셔' 놓는 게 가장 흔하지만 박통냉면·박통칼국수·박통막걸리 같은 '박통' 프랜차이즈도 부지기수다. 1998년 대구 뉴영남호텔은 박 대통령을 회상시키는 '박통냉면' 1호점을 동성로에 내 화제를 모았다. 냉면은 생전의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찾던 대표적 음식. 박통물냉면·새마을김치만두·상모리소고기수육·상모리녹두빈대 등 박통을 연상시키는 10여가지 메뉴에 동동주 등 향토적인 음식들도 곁들인 박통냉면은 전국체인점으로 명성을 떨치다 지금은 하나 둘 사라졌다. 대전 서구 탄방동의 박통냉면 한 종업원은 "전국에 남은 유일한 체인점으로 알고 있다"며 "식당 간판엔 아직도 박통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고 전했다.

박통막걸리 또한 박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 박 대통령은 막걸리 애호가로 유명했다. 맥주와 막걸리, 소주와 막걸리, 사이다와 막걸리를 자주 섞어 마셨고, 각각 맥막·소막·막사이주라는 말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은 1998년 소떼 방북 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구로 박 대통령이 즐겨마다시던 고양막걸리를 가져가기도 했다. 이 같은 유명세에 힘입어 박통막걸리, 박통살얼음막걸리라는 이름의 전국체인점들이 아직도 여럿 있다.

박 대통령이 즐겨 먹지 않았어도 박통 자체가 마케팅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구미에 '박통칼국수'점을 차린 최근순 사장은 "박통의 고향 구미는 박통이라는 말 자체의 인지도가 높다"며 "3년 전 개업 당시 이 같은 인지도를 노려 마케팅 차원에서 박통이라는 이름을 달았다"고 했다. 성주 가천면 창천리 '꿩샤브샤브'식당에도 박정희와 육영수 관련 사진을 벽면에 여러장 붙여 손님들의 눈을 심심찮게 하고 있다.

박통 마케팅이 가장 치열했던 곳은 다름 아닌 정치판이다. 1997년 대선에서 신한국당 경선에 불복해 탈당한 뒤 국민신당 후보로 나선 이인제 당시 후보는 '박정희 흉내내기'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에게 맞섰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까지 따라했다. 당시 경제위기와 맞물려 학계에서도 박정희 재평가 논쟁이 활발할 정도로 박정희 신드롬이 강했던 시류에 편승한 행동이었다. 한동안 조용했던 정치권의 박통 마케팅은 2007년 대선 때 다시 재현됐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대선 후보들이 너도 나도 앞다퉈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 방문에 나선 것. 노무현 정부에 실망한 보수층이나 경기 침체에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박정희 시대의 고성장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전략이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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