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에 새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15년 지방 영주인 다이묘(大名)들을 통제하기 위해 '산킨코오타이(參勤交代)' 제도를 만들었다. 다이묘의 처자식은 반드시 에도에 거주해야 한다고 강제한 것이다. 다이묘 가족을 인질로 잡아 반란을 막으려는 방책이었다. 다이묘도 1년에 절반은 에도에 머물러야 했다. 매년 상경해 에도에 살면서 쇼군에 충성을 보이도록 한 것이다. 당시 '이리뎃포데온나(入鐵砲出女)'라는 말이 나돌았다. 에도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에서 들어오는 철포와 나가는 여자를 검문검색할 때 쓴 말이다. 무기류를 에도로 반입하는 것을 통제하고 다이묘의 처와 딸이 영지로 도망가는 것을 철저히 감시한 것이다.
영지와 에도를 오가는 다이묘 행차에는 많은 수행 가신들이 따라붙었다. 다이묘는 하사받은 영지의 크기에 비례해 수행원을 거느릴 수 있었는데 평균 100여 명 정도였다. 무려 2천775명을 데리고 다닌 다이묘도 있었다. 식솔이 많은 만큼 비용도 만만찮았다. 참근교대 행차에 막대한 돈을 지출토록 함으로써 다이묘들의 경제력을 약화시키자는 게 막부 의도였다. 막부 말기인 1865년 에도에 거주한 다이묘는 400명을 넘었고, 에도 면적의 3분의 1을 다이묘 저택이 차지했다고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의 여행기에 보인다.
"혁신도시 건설효과가 3배 이상 부풀려졌다"는 감사원 발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균형발전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정권 바뀌자마자 문제점을 들쑤시고 있는 것이다. 정부 방침도 '재검토'니 '보완 추진'이니 오락가락한다. 부산 혁신도시 기공식에는 참석하겠다던 장관이 갑자기 불참했다. 이전 대상 공기업의 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수도권 중심론자나 공기업 직원에게는 혁신도시가 마치 逆(역) 참근교대제로 여겨질 수도 있다. 생활여건이 나은 서울을 떠나 반강제적으로 지방에 가라고 하니 말이다. 이 와중에 백지화 얘기가 불쑥 나오니 속으로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그들 주장대로 혁신도시 효과가 약하거나 당장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떤 효과를 낳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다이묘 행차를 위해 도로 정비 등 사회 인프라 확충으로 유통이 발달하고 경제발전을 촉진시킨 참근교대제의 뜻하지 않은 효과처럼 말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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