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때리는 순간, 느낌이 '팍'…손은 안다 '타격의 과학'

스포츠는 대부분 '때려야 맛이 나는' 세상이다. 때리는 도구도, 대상도 다르다. 그러나 멀리, 정확히 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때려야 한다. 격투기 선수는 신체를 이용해 상대를 가격한다. 목표는 넉다운(KO). 한번의 타격이 승부를 가를 수 있다. '짜릿한 손맛' 뒤에 찾아오는 승리는 달콤하다. 거기엔 물론 과학적 근거가 있다.

◆치는 순간 '넘어갈' 줄 알았다

지난해 9월 4일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일이 터졌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이병규가 5회 말 만루 홈런을 쳐냈다. 한국 프로 출신 선수로는 첫 기록이었다. 이병규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맞는 순간 넘어갈 줄 알았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승엽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타자들은 홈런을 치는 순간을 알아챈다. 삼성 라이온즈의 거포 양준혁이나 심정수도 공이 제대로 맞았을 때 '손맛'을 느낀다고 한다. 타격에 불편함도 없고 힘 하나 안 들고 공이 날아가는 '짜릿한 맛'이다.

투수들도 홈런 맞는 순간을 느낀다. 삼성 라이온즈 윤성환 투수는 "맞는 순간 '아, 갔구나'란 생각이 들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물론 이럴 땐 소리도 시원하다. 일순간 더그아웃의 선수단은 일제히 "갔다(영어의 go에서 유래)"고 외친다.

홈런의 비밀은 '스위트 스폿(sweet spot)'에 있다. 방망이 끝에서 17㎝ 정도에 위치한 배트 중심부다. 이곳에 공이 맞으면 배트 잡은 손에 아무 진동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공은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은 채 투수가 실은 에너지 그대로 허공을 가로지른다. 담장을 넘기기가 그만큼 쉽다는 얘기다. 방망이에도 무리가 안 간다.

야구 타자들은 이 지점에 공을 맞히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한다. '20세기 최후의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전 보스턴 레드삭스)도 이런 연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트 스폿에 맞은 공 자국이 배트 주위로 '하얀 띠'를 이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스위트 스폿에 공을 맞히는 연습용 배트도 개발돼 시판되고 있다. 테니스나 탁구의 라켓에도 스위트 스폿이 있다. 테니스 라켓의 중심부에 공을 맞히면 힘을 덜 들이면서도 공이 뻗어나간다.

◆휘두른 순간 '멀리 날아갈' 줄 알았다

파란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골프장 그린 위에서 '나이스 샷!'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스위트 스폿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히 비거리가 중요한 드라이버샷을 할 때엔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골프채 헤드의 무게 중심 부분에 공을 맞혀야 공이 제대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들이 친 골프공이 역회전이 많고 타격 각도가 커지는 것도 드라이버 헤드 중심에 공을 잘 못 맞히기 때문이다. 골프공이 스위트 스폿에서 5㎜ 벗어나면 비거리가 약 30야드 정도 줄어든다. 1㎝ 이상 벗어나면 50야드 넘게 차이가 난다. 이렇게 되면 장타 선수가 되긴 글렀다.

프로 골퍼들은 손을 통해 스위트 스폿에 공이 맞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들도 '손맛'을 느낀다. 스윙 분석 전문가인 배창효씨는 이를 '손에 쫙 달라붙는 느낌'이라고 했다. 기분 나쁜 충격도 없고 무게감도 안 느껴지는 상황에서 묵직하게 맞는 느낌이라고 했다. 배씨는 클럽 헤드의 스위트 스폿보다 살짝 위에는 '핫 스폿(hot spot)'이 있다고 했다.

이곳으로 공을 때리면 역회전이 줄면서 공기저항이 적어지기 때문에 공이 멀리 날아간다는 이야기다. 땅에 떨어져도 많이 굴러가기 때문에 비거리는 늘어난다. 잘 맞았을 경우 소리도 다르다. 골프채 개발은 타격의 정확도를 높여 비거리를 늘리기 위한 경쟁이다.

◆맞는 순간 '쓰러질' 줄 알았다

격투 종목에서 느끼는 '손맛'은 구기와 다르다. 복싱에서 KO 펀치는 '타이밍(timing) 펀치'와 '파워(power) 펀치'로 나눠진다. 달려드는 상대방에 주먹을 뻗어 KO시키는 타이밍 펀치의 충격력은 상대 선수가 달려드는 빠르기만큼 배가 된다. 정확하게 타이밍 펀치를 날리면 상대는 넉다운된다. 펀치력 센 선수들의 파워 펀치 한방만 들어가면 상대는 링바닥에 드러눕는다. 최병권 대구체육고 복싱부 감독은 "주먹이 센 선수들은 때리는 순간 '이건 들어갔구나' 하는 감이 온다"고 설명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주먹 세기가 1t에 달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런 주먹에 한대 맞으면 사람의 뇌는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뇌진탕을 일으킬 수도 있는 수준이다.

선수들의 설명은 더욱 생생하다. '외팔이 입식 격투가' 최대식은 "상대방 선수를 제대로 맞히는 순간 머릿속에서 '이겼다'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주먹이나 발끝에 전해오는 결정타의 느낌은 세상 무엇보다 짜릿하다고 했다.

질 때의 기분은 완전히 달라지는 법. KO당할 때는 어떤 느낌일까? 최대식은 "아무 생각이 없다"고 했다. 펀치나 킥에 정확하게 맞아 KO되는 순간 딱 하나의 생각만 난다고 얘기했다. '상대 선수가 왜 내 앞에 서 있을까?' 그리고는 링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러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갖가지 영상이 아른거리며 다양한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선수는 경기 마지막 뒤돌려차기 한방으로 상대 선수를 기절시킨 장면으로 유명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실험 결과, 이런 장면이 나오려면 상대 선수에게 700여㎏의 충격이 전해져야 한다. 무예타이의 무릎차기(니킥)는 시속 56㎞의 자동차와 정면충돌하는 정도의 파괴력이 있다.

스포츠 선수들이 희열을 느끼는 수단이나 방법, 사례는 다르지만 공통으로 적용되는 점은 있다. 거듭되는 훈련을 통해야만 그 희열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연습을 해야 완벽해진다'는 서양 속담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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