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졸업 후 찾은 교복전시관에서 가슴이 '뭉클'

작년 봄에 여고를 졸업을 한 후 30년 만에 대전 유성의 한 호텔에서 총동창회를 가졌다. 전국에 흩어진 동창이 480명중에 200여명이 모였고 다들 열심히 자기들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일을 하는 친구의 사회로 식이 진행이 되는 동안, 까마득하게 잊었던 학교의 생활이 떠올랐고 교가를 부르면서 눈시울을 적었다.

그 날의 밤을 3학년 8반인 우리 반끼리 모여서 밤을 새워 이야기를 했고, 다음 날 아침 은행나무 골목이 있는 모교를 찾아가서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동복과 하복이 그대로 유리 상자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3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서 바라보는 사진들과 교복은 그 때의 우리들의 모습을 하나같이 기억을 하게 만들어 주었고 모교의 배려에 감사했다.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들을 일곱을 키우면서 나의 희망을 아이들에게 걸고 어려움을 참아나가는 연습을 하며 살아왔다. 내년이면 다섯째가 중학교를 간다. 중학교를 진학을 하는 아이들 교복을 맞출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1970년대는 누구나 어려운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에 들어가는 딸을 위해서 손바닥만 한 논을 팔아서 등록금을 대어 주었고 교복을 사주셨다. 그리고 까만 교복을 입고 공부를 하는 딸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3년 후, 대전의 명문의 여학교에 합격을 했을 때 아버지 자신은 시장에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국수 한 그릇을 안 드시고 집으로 가셨고, 늘 논에서 일을 하고 피를 뽑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만으로 좋아 하셨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미래를 걸었고 고난의 세월에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 험한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김순호(김천시 성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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