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주 관광객'인가 '우주 실험전문가'인가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씨 귀환…정체성 논란

19일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30·여)씨가 ISS에서 귀환한다. 카자흐스탄을 떠난 지 꼭 11일 만이다. 그녀가 우주에서 푸른 지구를 바라볼 동안 지상에서는 그녀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우주인이 맞는지에 대한 정체성부터 우주 비행과 실험의 비용 대비 실효성 논란에 이르기까지. 우주 비행은 득이었을까, 실이었을까?

◆우주인? 참가자?

이소연씨가 우주로 떠난 후 "과연 그녀가 '우주인'이 맞느냐"는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이 같은 논란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웹사이트를 통해 이씨를 '우주비행 참가자(SFP-spaceflight participant)로 정의하면서 불거졌다. 러시아 우주연방청의 공식 사이트도 이씨를 참가자로 규정했다. 미국이나 러시아는 일반적으로 우주인을 우주선을 조정하는 선장(commander)과 비행사(pilot), 시스템을 조작하는 운용 전문가(mission specialist), 특정한 실험 목적을 위해 우주비행에 참여하는 우주실험 전문가(payload specialist) 등으로 분류한다. 개인 자격으로 우주비행을 하는 경우 '상업적 사용자 및 관광객(commercial users & tourist)'으로 구분한다. 이씨의 소유스호 탑승은 한국과 러시아 우주연방청의 상업계약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우주비행 참가자'라는 것이다. NASA는 우주여행회사인 '스페이스 어드벤처'를 통해 2001년 우주 여행을 다녀온 데니스 티토를 비롯해 지금까지 배출된 5명의 우주여행객을 '우주비행 참여자'로 분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녀가 정식 우주 임무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가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일부 네티즌들은 그녀에게 '우주 관광객 된장녀'라는 자극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부는 '이씨는 우주실험 전문가'라고 반박했다. 단순한 우주관광객과 달리 국가가 부여한 과학실험 임무를 받아 수행했고, 관련 전문 훈련을 1천800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받았다는 게 이유다. 또한 이씨와 예비우주인 고산씨가 지난 3월 러시아 우주연방청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가 공인한 '우주인 자격증'을 받았다는 점도 이유로 든다.

이 같은 공방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우주인 분류 규정이 없는 탓도 크다. NASA는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러시아, 일본, EU 등 16개국 이외의 우주인에 대해 모두 '우주비행 참여자'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우주 비행과 관련된 훈련을 이수하면 우주인 칭호를 주고 있는 반면, 미국은 고도 80㎞ 이상을 '비행'하는 사람에게만 우주인의 지위를 준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이소연씨가 우주인으로 선발되기 전에 남긴 한 사적인 인터뷰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여행객이라고 하면 그냥 짧게 3개월 정도 훈련만 받으면 돼. 올라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구경만 하면 되지만 우리는 과학자들이 하는 훈련을 똑같이 받아.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선장이나 조종사나 운용 전문가가 되겠어. 그건 자기 나라 우주인한테만 주는 자리야. 누가 자기 나라 우주선에다가 외국인을 선장이나 조종사로 태워주겠어. 말도 안 되지. 우리는 지금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야. 우리도 언젠가는 우주선을 만들려고 하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남의 나라 것을 한번 타보고 공부를 해야 될 거 아냐? 좋은 차를 만들려면 다른 좋은 차를 타보고 연구해야 하듯이."

◆260억원짜리 이벤트?

우주비행이 혈세를 퍼부은 '대국민 이벤트'라는 시각도 있다. 우주인 프로젝트에 들어간 비용은 260억원. 2006년 12월 이소연, 고산 두 우주인 후보 선발 이후 정부가 투입한 예산이 210억원, 주관 방송사인 SBS가 50억원을 지원했다. 여기에는 정부가 러시아에 지불한 우주인 훈련비용과 우주선 탑승 비용이 포함돼 있다. 결국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우주에서 간단한 과학실험을 한 것이 큰 의미가 없는데도 260억원이나 들이는 것이 합당하냐는 주장이다. 한 블로거는 "무중력 상태에서 실험이 중요하다면 실험 요청을 하면 되는 걸 굳이 200여억원을 들여 한국인을 보냈어야 할 필요가 있었느냐"며 "이소연씨가 우주에서 한번 둥둥 떠 있다 오는 것이 우리나라 우주과학의 혁신이냐"고 반문했다. 공군 파일럿이나 우주 관련 전문가를 보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차후 유인 우주선 개발 사업을 위해 보다 우주선과 비행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인재가 우주인으로 선발됐어야 한다는 논리다. 블로거 '누렁별'은 "이번 우주인이 초창기 우주 탐사를 하던 다른 나라의 전형적인 예처럼 공군 조종사 출신이 가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박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제한적인 실험이지만 지속적인 무중력 환경에서 얻어낸 우리만의 실험 결과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우주에서 진행되는 실험의 경우 일부 기초과학 연구를 제외한 우주 개척 기술이나 산업과 연관된 연구 내용은 공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는 것.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이소연씨는 우주 생활 동안 공모를 거쳐 선정한 18가지의 과학실험을 수행했다. 초진공, 미세중력의 조건을 갖춘 우주환경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 지구에 비해 유리한 실험 조건을 제공한다. 특히 초파리를 이용한 중력반응 및 노화유전자 탐색 실험과 우주공간에서 사용할 소형 생물배양기, 우주시대에 대비한 차세대 메모리소자 실증실험, 무중력 상태의 제올라이트와 금속-유기 다공성 물질 결정 성장 등은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금속-유기 다공성 물질' 합성 실험은 세계 처음으로 우주정거장에서 시도됐다. 전자가 없는 금속 원자들을 이용, 유기 분자들이 저절로 조립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우주비행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우주 실험 장비와 우주식품 등 유인 우주선 개발을 위한 필수 기술을 확보한 점은 가장 큰 무형의 효과로 꼽힌다. 특히 김치와 고추장 등 한국식 우주식품은 러시아도 놀라움을 표시할 정도로 높은 기술 수준을 자랑했다는 것. 또한 제올라이트 결정 실험 등 산업적으로 가치있는 실험들이 진행됐고 ISS 내의 소음 환경, 우주에서 신체 변화 측정 등은 향후 유인 우주장비 개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당장 유인우주선을 직접 발사하거나 미국·러시아의 우주선을 조종할 수는 없는 만큼 단순히 공군 출신의 우주비행사보다는 우주실험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과학자가 유리했다는 시각도 있다.

김기석 교육과학기술부 사무관은 "국제우주정거장은 건설에만 수십조원이 필요한 거대한 사업인 점을 감안하면, 1년의 우주인 훈련과 우주실험에 260억원을 쓴 것은 최소한의 경비"라며 "260억원의 가치는 우주인 배출 이후 한국 과학자에 대한 대우와 과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어떻게 바뀌냐에 달려있는 것이고, 무의미한 논쟁보다는 냉정하게 우리 과학의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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