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春)의 어원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동사 '본다(見)'가 그 어원이란 주장에 기꺼이 한 표를 주고 싶다. 잿빛으로 대변되는 겨울과 달리 봄은 화려한 색의 향연을 펼쳐 사람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노랗고, 하얗고, 붉은… 색의 군무(群舞)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봄은 화려하다.
가야산의 봄을 찾아 나선 길. 가장 먼저 노란 색이 손짓한다. 너른 성주 들판에서 요즘 '위세를 떨치는' 색깔은 단연 노란색이다. 넘실거리는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참외들이 노란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맞는다. 참외의 노란 색은 성주 사람들에겐 황금빛이기도 하다. 성주를 대표하는 고소득 작물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정성스럽게 키운 참외를 따는 노부부의 얼굴에 봄 햇살이 따사롭다.
성주읍을 지나 가야산으로 가는 33번 국도. 길 양 옆으로 봄이 물결친다. 하얀 벚꽃과 노란 개나리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고운 자태를 뽐낸다. 멀리 산자락엔 분홍색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었다. 대도시에서 보는 개나리와 달리 가야산 가는 길에서 만난 개나리는 유달리 샛노랗다. 맑디맑은 공기와 물을 호흡하고 마시며 자란 탓이리라.
수륜면 백운리에서 용기골을 따라 서성재로 오르는 길에도 봄이 절정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존재는 갈수록 푸르름을 더해가는 신록. 골을 타고 내려온 봄 바람에 하늘거리는 연둣빛 신록이 눈과 가슴으로 들어온다. 깨끗하고 신선하고, 그리고 생기가 느껴진다. 수필가 이양하가 '신록예찬'에서 갈파한 것처럼 가만히 신록을 대하고 있으니 눈과 머리와 가슴이 청결하게 씻기는 것 같다.
가야산 정상 동남쪽에 자리잡아 볕이 잘드는 용기골에서는 겨울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얼음 녹은 물이 계곡을 힘차게 흘러내리며 폭포를 만든다. 그 옆으로는 분홍색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 있다. 조금 더 오르니 노란 산수유도 만개했다.
심원사 뒤편 만물상을 오르는 길에서 만난 진달래에게선 새삼 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모진 비바람이 부는 산등성이 바위 틈을 뚫고 진달래가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렸다.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의 전설이 깃든 상아덤 부근에서 땅을 헤치고 올라온 이름모를 보랏빛 야생화도 한창 봄빛을 머금었다.
수륜면을 돌아나와 가야산 북쪽에 자리잡은 가천면으로 발길을 돌린다. 대가천에 합류하는 옥계를 따라 올라가는 길, 신계리 부근에서 "아!"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하얀 벚꽃과 푸른 버드나무, 그리고 분홍 진달래가 한눈에 들어오며 삼색(三色)의 향연을 펼친다. 보색대비를 이루는 색의 향연에 잠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다. 상생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상으로부터 5부 능선 아래로는 봄이 한창이지만 그 위로는 아직 겨울이 서성거리고 있다. 가야산 정상의 북사면에는 4월 중순이지만 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이달 초 가야산에 올랐을 때 만난 우람한 소나무들은 머리에 잔뜩 흰 눈을 이고 있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동굴에는 얼음 기둥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가야산 북사면에는 봄과 겨울, 두 계절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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