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들이 떼지어 도살장으로 들어간다.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날파리들이 달려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살충제를 뿌려 댄다. 꼬리를 휘둘러 날파리를 쫓다 보면 체중, 즉 고기 근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도살의 모든 것이 비밀의 장막처럼 숨겨진 채 이루어지기 때문에 슈퍼에서 선택하는 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눈 앞에 진열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오직 부위별 상품만을 선택할 뿐이다.
닭들은 또 어떤가. 대부분의 닭들은 병든 상태이다. 좁디좁은 닭장에서 운동은커녕 움직일 틈새도 없이 연방 먹이만 먹어댄다. 밤새도록 먹게끔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고 닭은 오로지 먹고 살만 찔 뿐이다. 달걀 낳기는 가히 '달걀공장'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육체적 손상 속에서 살아가고 그대로 도살장으로 직행한다. 우리들은 프라이드 치킨이나 냉동육으로 닭고기를 만날 뿐이다.
미국발 쇠고기 무제한 수입조치가 축산농가에 태풍을 몰고오고 있다. 장차 광우병 쇠고기 공포가 한반도를 휩쓸 수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AI)가 휩쓸고 지나간 농장에는 닭과 오리가 흔적도 없다. 걸핏하면 반복되는 인플루엔자 광풍에 닭과 오리는 그저 흙더미 속으로 매장될 뿐이다. 축산농가에 비상이 걸리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장터에서 소값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전업 축산농가는 물론이고 한두 마리 키워오던 농가도 초비상이다.
농민단체에서는 연일 한미 FTA 반대 구호를 내세울 것이고, 축산농가 도산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요구할 것이다. 생존권의 문제인 이상, 당연한 저항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소나 돼지나 닭 같은 육고기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축산농가의 암울한 현실은 충분히 이해가 가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미안하게도 축산을 뛰어넘는 전혀 다른 가치관에 있기 때문이다.
육고기 중심 생활관은 가축으로서의 동물이 아니라 오로지 고기상품만을 지향한다. 가축이 아니라 '고기상품'만이 강조될 때,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고기 근수를 얻는 데만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인체에 치명적인 항생제를 남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축들이 먹는 사료 자체가 의심스럽다. 육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과 사료, 그 밖의 에너지가 요구된다. 가축들이 먹어치우는 옥수수사료 등을 사람에게 돌린다면, 현 인류의 기아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인간이 죽어가고 있는데 가축에게 무한정의 사료가 공급되고 있으며, 그 가축으로부터 육고기를 얻기 위한 부당한 현실이 반복된다.
조류 인플루엔자도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거의 주기적으로 닥쳐오고 있다. 조금만 잘못하면 감기에 걸리듯 허약체질이 된 축산산업의 틈새를 비집고 인플루엔자는 번번이 습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광우병 걸린 소도 특이 현상이 아니다. 거의 주기적으로 닥쳐오고 있다. 미국과 협상을 벌이면서 광우병 걸린 소를 막아내기 위해 싸워온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사라졌다. 근본적인 것은 이번 소고기 전면개방의 찬반논쟁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즉 반생명적인 육고기 중심을 포기하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을 사랑하라는 부처의 말씀이 그러하였고, 예수의 말씀이 또한 그러하였다.
한국인의 식단은 본디 나물이나 채소 같은 채식 위주였다. 채식을 근본으로 하면서 어쩌다 고기나 어패류가 곁들여지는 지극히 건강한 식단이었다. 전통 식단 자체가 건강식이었다. 그런데 그 뛰어난 식단을 포기하고 정체불명의 으깬 고기 따위에 눈이 팔려있고, 고깃집만 번성하고 있다. 그 결과가 이번의 전면개방으로 나타난 것이다.
육고기 중심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소나 닭을 둘러싼 최근의 심각한 제 문제들이 하나도 해결될 수 없다. 식품매장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장바구니에서 고기가 빠지는 날이 많아질수록, 이번 미국 수입소가 불러올 파장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장바구니에서 육고기를 빼는 방법, 그 방법이야말로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주강현(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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