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매 순간의 확인

매 순간을 쫓음으로써 강박적으로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려는 일본인 개념미술가 온 카와라의 대표작은 '날짜 그림'이라 불리는 '오늘' 연작이다. 단색 화면에 흰색 활자체 대문자로 제작 당일의 날짜를 그린 이 연작은 1966년 1월 4일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작가는 하루에 세 개까지 작품을 제작할 수 있지만, 만약 그날 자정까지 그림이 완성되지 않으면 그 그림을 폐기시켜 버린다. 또한 그는 날짜 그림을 그날의 지역신문에서 가장 이슈가 될 기사 한 페이지와 함께 상자에 넣는데, 이는 작품을 제작한 날 작가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기록이 된다. 이 연작은 '나는 ○○○를 만났다'와 같은 식으로, 작가에게 일어난 일상의 일들을 한 문장으로 기록한 전보를 매일 갤러리나 예술계 지인들에게 보낸 엽서도 포함하고 있다. 그중 가장 신랄한 것은 '나는 아직 살아있다-온 카와라'일 것이다.

작가가 살아있는 한 계속 진행될 연작의 또 다른 예로 로만 오팔카의 숫자 그림을 들 수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폴란드 작가 오팔카는 1965년 이래 지금까지 1부터 무한에 이르는 일련의 숫자들을 쓰는 일을 해오고 있다. 그는 흰색 물감을 묻힌 붓에 물감이 남아 있을 때까지 숫자를 써 가는 작업을 반복해나간다. 처음에 검은색 바탕에 흰색 숫자로 시작했지만 그림이 완성될 때마다 캔버스 바탕에 1%씩 흰색을 첨가했기 때문에 그림은 점차 회색 톤으로 변하고 있다. 한편 그는 그림 한 점이 완성될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늘 흰색 셔츠 차림, 동일한 포즈로 찍은 사진들은 작품의 변천과정에 따라 희미해지는데, 최근 사진에서 늙은 작가의 모습은 희뿌연 화면 속으로 사라져버릴 듯하다. 현재 서울 소격동의 한 화랑에서 프랑스 큐레이터가 기획한 '감각적인 시스템'이란 전시에서 오팔카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카와라와 오팔카는 매 순간을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에 맞서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작가들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고행과 절제, 끈기와 일관성 속에서 진행된 이 두 작가의 작업은 예술가에게 삶을 확인시키는 동시에 삶이 소멸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의 작업에 나타난 시간의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삶과 죽음의 문제를 되짚어보게 한다. 작품을 제작하는 시간 동안 예술가는 자신의 의식에 의해 거역할 수 없는 천체시간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은 우리를 시간과 존재, 나아가 삶에 대한 성찰로 유도하고 있다.

갤러리분도 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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