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 의도
이번 논제는 경북도교육청 사이버 논술 교실(http://kben.org)에서 출제한 2007년도 1학기 논술 제4회 고등학교 2학년용 문제입니다. '19단 곱셈 외우기'에 관한 논란을 통해 우리 수학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보는 문제입니다.
'문제 게시판' 310번 자료와 '논술 첨삭(고)' 게시판 781번 자료를 참고하세요.
◆학생 글
[A] (1)요즘 우리나라의 수학, 과학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2)그 결과, 우리나라 이공계의 미래는 어둡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3)하지만 이상하게도 초등생들 사이에서는 '19단 외우기'를 비롯한 수학적 사고력 키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4)아래의 두 글은 우리나라에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이 '19단 외우기'에 대한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B] (5)글 [가]에서는 찬성의 입장을 드러낸다. (6)우리와 마찬가지로 '19단 외우기' 열풍이 불고 있는 인도는 알아주는 IT강국이다. (7)얼마 전 신문에도 보도되었듯 최고의 대학이 공대인 인도에서는 수학, 과학에 대한 교육열 또한 높다. (8)이런 인도에서 '19단 외우기'는 이미 일반적인 것이 되어 있다. (9)그들은 간단한 암기를 통해 수학적 논리력이 더욱 좋아진다고 말한다.
[C] (10)한편 글 [나]에서는 반대의 입장을 드러낸다. (11)이 글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힌 이들은 모두 수학 분야를 연구하는 수학자들이다. (12)누구보다도 19단이 필요할 것 같은 이들은 19단 외우기 열풍에 대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13)현대의 수학은 컴퓨터 등의 기계의 도움을 받아 복잡한 계산을 정확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게다가 수학 연구에서 빠르게 계산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14)이런 이유들로 인해 수학자들은 19단 외우기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며 현재의 19단 외우기 열풍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이다.
(15)위에서 보듯이 글 [가]와 [나]는 정반대 성향의 글이다. (16)이들 모두 조금씩 수정되어야 한다. (17)한국과 인도의 19단 외우기는 약간 과한 면이 있다. (17)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암기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의 사고력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18)하지만 그것이 무조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19)복잡한 계산, 속도가 필요한 계산은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겠지만, 간단한 문제는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수학적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D] (20)그렇다면 이 두 의견을 조합해서 다른 방안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21)글 [다]는 우리의 전통 수학책인 '이수신편'을 소개하고 있다. (22)이 책은 연립방정식 등의 여러 수학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매우 기발한 해결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23)같은 연립방정식이라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푸는 것이다. (24)이렇듯, 19단도 조금 다르게 외운다면 어떨까? (25)예를 들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외운다던가, 구구단으로 응용하기가 조금 어려운 11, 13단 등만 새로 외우면 어떨까? (26)무조건 암기만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7)우리의 다른 수학 교육도 편리함과 함께 창의성과 응용력 기르기를 함께 쌓도록 해야 한다. (28)이렇게 다양한 교육방법을 통해 수학,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면 우리도 이공계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경혜(경주여고 2학년)
◆제시문 분석
제시문 [가]는 인도에서 확산되고 있는 '19단 곱셈 외우기'를 유용성 측면에서 보도하고 있는 기사문이다. 인도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19단 곱셈을 학습시키고 있다. 어릴 때부터 수와 친숙해지고 자신감을 심어 주고자 함이다. 19단을 익히면 사칙 연산에 활용할 수 있고 수에 대한 성질과 구조를 알아 확장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 준다. 그런데 19단을 단순히 암기해서는 곤란하다. 19단에 있는 많은 수들을 접하게 되면 처음부터 포기하기 쉽고, 무작정 외우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원리를 깨달아 19단에 숨어있는 곱셈의 원리를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분량만큼 익힌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익힐 수 있다. 원리를 알고 익힌 후에는 리듬 등을 통해 충분한 반복 학습을 하면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구단과 마찬가지로 같은 수를 거듭해서 더해가다 보면 수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커지므로 '동수 누가의 원리'(일종의 뛰어 세기·예로 12×12=144, 12×13=144+12=156)'를 보다 쉽게 익힐 수 있다.
제시문 [나]는 '19단 곱셈 외우기'의 열풍이 빚어내는 부정적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 수학적 사고는 단순한 암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과 창의력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수 감각은 어림산 능력, 규칙성 발견 등 여러 영역으로 이뤄져 있는데, 곱셈 규칙인 19단을 외워서 수리력, 수 감각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구구단의 원리를 알면 19단이든, 25단이든, 100단이든 원리는 똑같기 때문에 따로 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보편적 사례도 입증되지 않은 19단을 잘 외워서 수학 영재로 만든다는 것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19단을 외워서 계산력이 빨라지기는 하지만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경우가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739×293'처럼 19보다 큰 수로 이뤄진 곱셈에서 19단은 무용지물이다. 또 계산, 산수의 비중이 높은 초등학교의 낮은 학년과 달리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제 해결력이나 창의력과 같은 높은 수준의 사고 능력이 수학 실력에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한양대 수학과 김용운 명예 교수는 "모든 교육은 한 가지를 알고 열 가지를 써먹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인데 19단 열풍이 부는 것을 보면 교육 철학이 얼마나 빈곤한지 알 수 있다"며 "십진법 중심, 구구단 중심으로 편성된 우리나라 수학교육 과정상 19단을 외우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잘라말한다.
수학 교사들의 모임인 '수학 사랑' 회장인 서울 용산고 최수일 교사도 "컴퓨터를 0과 1만 쓰는 이진법을 적용해 만든 것은 숫자를 적게 쓸수록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며 "19단은 구구단보다 수십 배 또는 수백 배의 암기 부담을 가져와 아이들의 뇌에 부하를 줄 가능성이 높아 수학적 사고력 신장을 오히려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제시문 [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수리적 사고를 보여주는 지문이다. 선조들은 수학을 할 때 '산목(算木)'이라고 하는 독특한 도구를 이용했다. 산목을 이용한 계산 과정의 큰 특징은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두고 '산법(算法)'이라 일컬었으며, 산목을 이용, 단순한 셈뿐 아니라 음수의 개념까지 표현할 수 있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수학 문제를 풀 때는 문제를 시로 지은 후 산목을 이용해 문제를 풀어 풍류와 수학을 함께 즐기는 멋스러움도 지니고 있었다. 또 조선 시대에 '산사(算士)'는 수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중인 출신의 계급이었다. 이들은 '취재'(取才)라는 과거에서 합격하여 주학입격안에 이름을 올렸으며 엄격한 조직을 통해 전문인으로서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를 높여나갔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고 세금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며,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는 것이었다. 이는 산사들이 휴대하고 다녔던 '치부록'이라는 수학책에 잘 나타나 있다.
◆첨삭 지도
서론은 '독자의 흥미 유발과 문제 제기'를 하는 단락이다. (1)에서 우리 나라 수학·과학교육의 부정적 실태를 언급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있지만, 이러한 배경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없기에 어설프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우리 교육의 실태와 이공계와의 관련 여부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한 것이기에 (2)의 단정적인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3)에서 '19단 외우기'를 '수학적 사고 키우기'와 동일시하는 태도도 문제다. 이 글의 문제는 '19단 외우기'가 과연 '수학적 사고 함양'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해명하는 것이다. 즉 이런 점에서 볼 때 학생 글은 '서론 쓰기'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B]에서 '19단 외우기'의 긍정적 측면을 IT강국인 인도에서 일반화된 사례를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이다. 자신의 논점에 지지를 얻기 위해 권위자의 말을 인용할 때 발생하는 논리학적 오류다. 인도를 IT 강국의 사례로 들기에는 석연치 않으며, 이에 대해서는 시각차가 존재하기에 설득력 있는 논거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C]에서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제한된, 부적합한, 대표성을 결여한 자료를 근거로 일반화하는 오류다. (11)에서 제시문 [나]에 언급된 사람들이 모두 '수학자'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12) 이하에서 이들이 '우리 나라의 수학자'를 대표하는 것으로 논술하고 있다. 또 (12)에서 '수학자'들이 누구보다도 19단이 필요하다고 단정짓는 견해도 논거가 확보되지 않은 불확실한 논증이다.
[D]에서는 '논점 이탈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24)에서 '19단 외우기'를 다르게 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이 글의 논제와 무관하다.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수학학습의 방향에 대해 핵심적 논의를 하지 못하고 (26)과 (27)의 상식적이고 추상적인 주장을 제시함으로써 논제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논술에서 논리적 전개를 하지 못한다면 모든 논의가 무가치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학생 글에서 나타난 '논리적 오류'의 발생 원인을 잘 파악해 보아야 한다. 아울러 '논리적 문장쓰기'에 대해서도 좀더 관심을 가지기를 당부한다.
최병영(포항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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