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의 지능형자동차 연구팀은 2006년부터 과학기술부의 207억원 규모 '톱브랜드(Top Brand) 프로젝트' 과제와 50억원 규모 지능형 자동차 부품산업화 지원 지역혁신사업을 해왔다.
그런데 주역을 담당했던 지능형자동차 연구팀장이 지난해 3월 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버렸다. 그 팀원들은 지멘스, 모토롤라, 국방과학연구소 등 좋은 연구환경에서 억대 연봉을 받고 일하다 DGIST로 자리를 옮긴 엘리트들. 하지만 이후 지능형 자동차 연구팀은 연구주도권을 팀장이 자리를 옮긴 대학으로 넘겨주고 만다. 핵심팀장은 왜 DGIST를 박차고 나갔을까? 이 팀장의 '이탈'은 DGIST의 모든 문제점을 대변하고 있다.
◆핵심인력 이탈 심각=DGIST에선 최근 2년간 팀장급 핵심인력 5명이 빠져나갔다. DGIST는 매년 30여건의 특허를 획득하고 있지만 최근 고급인력이 이탈하거나 최고 수준의 엘리트들이 오지 않고 있다. 이것은 교육기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DGIST 내부와 다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DGIST 한 연구원은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대기업이나 다른 연구소에서 올 때 DGIST가 교육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고 연구여건 등이 국가출연 연구소답지 않게 열악한 것이 조직을 떠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DGIST의 교육기능 확보를 위한 법안 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산학연클러스터 조성에는 우수 연구인력을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충원하는 시스템이 절대적"이라며 "DGIST 교육기능을 통해 우수인재의 역외유출을 막고 기술혁신을 유도할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DGIST 성공뿐 아니라 테크노폴리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도 고급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필수적이라며 광주과기원(G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에 석박사 과정을 두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라는 것.
일부 대학 및 교수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100~200명 규모의 최소 인원으로라도 교육과정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관 설립 후 초대원장 시절 수차례에 걸쳐 비정상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등 조직설계와 경영관리에 많은 실착을 한 것도 DGIST 위기의 한 요인이다. 최고수준의 엘리트를 뽑아도 시원찮을 판에 자리보전용으로 이른바 '퇴물'들을 다수 뽑았다는 것.
나노연구자를 디스플레이 연구부서로 배치하고 특정분야에는 전공자가 아닌데도 선발하는 등 국책연구소답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DGIST는 현재 4명에게 명예퇴직 신청서를 받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퇴진을 설득 중이다.
정책기능 부재도 DGIST가 정체성과 연구개발 역량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이유다.
DGIST가 '동남권 R&BD의 허브'로 세계 최고 수준의 융합기술 첨단 연구개발기관을 지향하고 있지만 정부, 지방정부, 기술정책 및 기술혁신 아카데미 등이 요구하는 정책자문 기능을 못하고 외부 기관의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또 지역 혁신정책, 클러스터 구축, 지역 중심의 융합 기술개발 프로그램 등에서도 자체 연구역량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연구결과에 대해 기술이전 및 기술사업화를 할 전문인력이나 조직도 없어 산업현장에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구 및 경북전략산업기획단 관계자들은 "대구경북 산업현장을 이해하고 지역 산업정책에 맞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전문가와 정책부서가 없어 DGIST가 혼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도적 인적 미비 탓=DGIST가 위상을 정립하지 못한 채 현재의 위기를 맞은 것은 ▷설립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고 ▷지역 사정을 잘 모르는 경영진의 무능 ▷지역사회와의 융화부족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DGIST는 설립과 동시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과 미국 MIT대학 컨소시엄에 16억원을 들여 입지와 규모, 발전방향, 운영 등 전 분야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보고서는 '동남권 R&BD(연구 및 기술산업화) 허브'로서 첨단 연구센터 및 인재양성기관'을 비전으로 ▷지역 산업구조 재편을 위한 신성장 엔진기술 개발 ▷세계 수준의 최첨단 연구능력과 네트워크 구축 ▷지역 연구개발 인력 양성을 위한 기반 구축 등을 임무로 규정했다.
하지만 해외 석학 초빙과 우수 인력의 흡입과 창출 역할을 할 인재양성기능은 지난해 대전권 국회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일부 대학과 특정교수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정치권, 학계, 시도 등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대구시는 DGIST 교육기능 확보를 위한 용역을 조만간 발주할 예정이고 정치권에서도 지난해 보류된 법안개정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DGIST 초대 원장은 "DGIST가 국가연구소이지 지역만의 연구소가 아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물론 DGIST가 국가출연 연구소이지만 대구경북을 위한 신성장엔진 기술개발과 산학연네트워크 구축의 중심축으로 설립된 만큼 지역 대학, 연구기관, 기업 등과의 연계·협력을 위한 노력에 소홀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 대구시와 옛 과학기술부, 기획재정부와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며 협력을 끌어내지 못한 것도 DGIST가 빨리 뿌리를 내리는 데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 DGIST 안팎의 지적이다.
특히 지역 대학의 무관심과 비협조도 DGIST가 불협화음을 내는 이유다. DGIST는 대학들과 교환교수제와 협력연구 창구를 만들어놓고 있다. 하지만 DGIST는 지역사회를 위한 각종 프로젝트 개발과 연구사업에 지역 대학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대학들도 DGIST와의 공동과제를 외면하는 등 사실상 협력을 거부하고 있다.
김만제 낙동경제포럼 이사장은 "DGIST의 활로 모색을 위해 DGIST 설립에 기여했던 전문가들의 자문시스템을 활용하고 대구시와 경북도, 지역대학, 지역기업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가지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석민기자 sukmin@msnet.co.kr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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