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할머니, 난 왜 엄마 아빠가 없어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초교생 성호군

▲ 심장 수술을 받아 힘들어하는 성호의 할머니 배효선씨가 혼자서도 생활을 꼼꼼히 해내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손자를 바라보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심장 수술을 받아 힘들어하는 성호의 할머니 배효선씨가 혼자서도 생활을 꼼꼼히 해내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손자를 바라보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오전 6시 30분. 이부자리를 걷고 졸린 눈을 비빈다. 얌전하게 씻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7시 30분. 할머니와 아침식사를 한다. 7시 50분까지 밥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면 8시 10분. 그제야 등굣길에 나선다. 8시 30분까지 학교에 가야 하는 성호(가명·11)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대구 달서구 신당동의 단칸방. 월세 13만원짜리 5㎡ 남짓한 방은 할머니의 누울 자리와 성호가 공부하는 앉은뱅이 책상이 있는 자리로 나눠져 있다. 가로 80㎝, 세로 30㎝짜리 밥상은 언젠가부터 성호의 책상이 됐다. 책상 옆에는 냉장고, 그 옆으로 2㎡ 정도 되는 부엌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다. 부엌 문을 열고 두칸의 계단을 내려서면 높이 50㎝ 정도에 가스레인지가 있고 등을 돌리면 시멘트가 발린 씻을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쪼그려 앉아야 머리를 감을 수 있는 할머니와 손자의 세면대다. 오후 3시 학교에서 돌아온 성호는 씻고 양치질하는 게 습관인 모양이었다. 청결해야 병이 없다는 게 할머니의 지론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플 때 돈이 없다는 거다. 병원에 갈 돈을 치르느니 잘 씻어 예방한다는 거다.

98년생 성호는 99년 할머니의 손에 맡겨졌다. 부모의 이혼 때문이었다. 성호의 부모는 성격차와 경제적 문제로 갈라섰다. 생후 9개월째였던 성호는 돌이 되기 전부터 할머니 배효선(가명·70)씨 손에 자랐다.

"그때는 고아원에 맡길까 생각도 했어요. 얘네 할아버지도 아팠거든요. 근데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더군요. 아빠란 사람은 소식도 없고. 그래서 키웠죠. 지금 생각해보면 안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호는 얌전했다. 얌전한 소년에게는 말을 걸고도 대답을 듣기가 어려웠다. 취재진은 눈길 가는 대로 방안을 둘러봤다. 방은 작았지만 장롱이며 거울이며 탁자까지 어느 것 하나 깔끔하지 않은 게 없었다. 성호의 얌전한 태도가 쉽게 이해됐다.

"어린 것이 얼마나 상처가 많았으면 저렇게 애어른이 됐을까요. 저도 미안할 따름입니다."

손자가 상처받을 것이 가장 염려된다는 할머니는 손자의 아픈 과거를 단 한번도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 난 왜 엄마, 아빠가 없어?'라고 물으면 '저 멀리 돈 벌러 갔다'고 말해주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묻질 않네요. 이젠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얼마나 착합니까. 저 아이한테 그런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네요."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은 할머니는 말을 하는 내내 힘들어했다. 아들에 대한 애증과 손자를 자신에게 맡기고 간 며느리에 대한 분노, 그리고 손자에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자책감이 뒤엉켜 힘겨움은 더했다.

"목사님이 되고 싶어요. 목사님이 돼서 아픈 할머니가 나을 수 있게 기도할 거예요.", "이눔아, 의사가 돼야 할미를 낫게하지, 허허허."

수학이 제일 재미있다며 수학책을 펼쳐보이던 성호의 책 사이에서 학교에서 보낸 통신문이 떨어졌다. '방과후 활동'과 관련한 학교 통신문이었다. 지난달부터 시작해 5월까지 이어지는 방과후 활동이었지만 단 한번도 할머니에게 보여준 적이 없는 듯했다.

"돈 들면 할머니가 힘들잖아요."

이튿날 오전 6시 30분. 이부자리를 걷고 졸린 눈을 비빈다. 얌전하게 씻고 얌전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할머니와 얌전히 아침식사를 한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어김없이 8시 10분 등굣길에 나서는 성호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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