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국무회의 유감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을 순방하고 귀국한 것은 21일 오후 11시 30분 밤이었다. 이웃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후쿠다 야스오 총리 주최 만찬을 하고 특별기편으로 일본 하네다공항에서 서울공항으로 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시간 30분. 웬만하면 하루 더 묵고 22일 귀국해도 될 법한데 굳이 귀국했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 대통령의 방일(訪日)을 크게 환영한 일본은 미국에서 나흘밤이나 묵으면서 일본에는 만 24시간 정도 머물고 가려는 데 대해 서운함을 표시, 외교채널을 통해 하루만 더 묵고 가라고 섭외했지만 우리가 거절했다고 한다. 청와대 측은 굳이 서둘러 귀국한 이유로 22일 오전으로 예정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는 자기 나라를 먼저 방문하지 않고 일본을 먼저 방문한 것을 섭섭해 하는 중국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외교는 여인의 마음처럼 그렇게 복잡 미묘한가 보다.

이 대통령이 소맷자락을 붙잡는 일본을 뿌리치고 돌아와 주재한 그 국무회의에 광역단체장으로서는 유일하게 오세훈 서울시장이 두 번째 참석했다. 서울시장은 단순한 광역단체장이 아니라 '특별시'의 장이기 때문에 '장관급 단체장'으로 특별하게 대우한 결과다.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배석한 것은 유신 직후인 1972년 12월부터였다. 서울시가 국가 행정 및 예산 등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서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선 광역자치단체장이 중앙정부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각의에 참석할 수 있느냐를 놓고 논란이 제기됐다.

지난 1995년 '국무회의 규정'을 개정, 임의 배석자로 명시된 서울시장을 삭제하고 다른 시·도지사와 마찬가지로 국무회의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 요구할 때만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하도록 한다는 원칙을 정했으나 당시 시장을 배출한 야당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계속 배석했다.

국무회의 배석권이 박탈된 첫 대상자는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 참여정부 시절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이 대통령은 2003년부터 참석 대상에서 빠졌다. 그해 6월 청계천 복원 계획 보고를 위해 단 한 번 참석했을 뿐이다. 한나라당은 당시 논평을 통해 "서울시장이 야당 출신이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며 "지극히 옹졸하고 이중적인 태도"라고 비난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알 수 없으나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특별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이 결정됐다. 하지만 특별시장에 대한 특별한 대우는 4·9 총선을 의식한 탓인지 미뤄지다 4월 15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부터 오 시장이 참석했다.

조선시대부터 한국의 首都(수도)였던 서울시가 특별하게 된 것은 광복 후인 1946년 軍政法令(군정법령)에 의해 '특별자유시'가 되면서부터다. 이후 1949년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서 지금의 특별시가 됐고, 1962년 특별조치법에 의해 내무부 직속의 다른 도와는 달리 국무총리 직속으로 그 지위가 승격됐다. 중앙 각 부처의 지휘와 감독권을 제한해 수도 행정의 독자적인 특성을 발전시킨다는 명분이었다.

게다가 1991년 공포된 '서울특별시 행정 특례에 관한 법률'은 "서울은 수도로서의 특수한 지위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국무회의에 특별시장이 참석하는 데 대해 여타 광역단체장들은 반대했다. 단지 배가 아파서가 아니라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회의에 특별시장만 참석하면 더 특별해진다는 생각에서였을 게다.

특별한 대우 탓인지 몰라도 특별시를 포함한 수도권에 국민 둘 중 하나가 살고, 농촌은 아이 울음소리마저 끊기는 적막강산이 된 기막힌 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일류선진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특별한 시의 시장이었던 이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적극 반대했고, 대통령이 되자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며 수도권 규제 완화 작업을 독려하고 있다. 정상외교 중 한미 쇠고기협상의 타결 소식을 듣고 도쿄에서 가진 조찬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소비자도 질 좋고 값싼 쇠고기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대통령이 외국으로 떠나자마자 국토해양부는 혁신도시에 공공기관 197개를 옮기는 조치를 재고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들이다.

국무회의에 특별시장이 참석하는 그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 완화가 국가 경쟁력 강화의 한 방안이라고 확신하는 대통령의 취향에 맞추려 국무위원들이 한 줄로 서고, 거기에 특별시장이 더 특별히 대우해 달라고 맘껏 얘기할 수 있는 그 회의 분위기가 걱정이다.

최재왕 서울정치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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